델몬트처럼 ‘유리생수병’, APEC의 디테일···무해한 미래 만들까

2025-11-10

지난 1일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각국 정상 앞에 유리로 된 생수병 2개가 놓였습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려는 숨은 ‘디테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상회의 결과 도출한 공동선언문 ‘경주선언’에 “증가하는 해양쓰레기 문제 대응 협력”이 담긴 만큼 그 취지를 살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해양쓰레기의 약 80%는 플라스틱 폐기물이거든요.

범세계적 협력을 필요로 할 만큼 버려지는 플라스틱 문제는 심각한데요. 유리병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점선면은 플라스틱병과 비교를 통해 유리병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겠습니다.

한국인이 쓰는 생수병 1년에 56억개

한국에서 한 사람이 연간 사용하는 생수 페트(PET)병은 109개(2021년 기준)에 달합니다. 2023년 그린피스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한국인이 사용한 생수 페트병만 56억개입니다.

왜 이렇게 많이 쓰일까요? 개인이 많이 쓰기도 하지만 정부나 기업에서 대량으로 구매하는 양도 많습니다. 강원 강릉시는 지난 9월 가뭄 동안 생수 974만8663병을 확보해 시민들에게 배부했습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2020년부터 무더위 대응으로 무료 생수를 비치하는 소위 ‘생수터’ 정책이 유행하듯 퍼지고 있고요. 국내 생수 시장 규모는 매년 성장해 지난해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재사용률 높을수록 유리병 ‘시장가능성’

이번 APEC에 사용된 생수병을 만든 업체 ‘소우주’ 최수환 대표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90%를 차지하는 생수 시장에서 유리병 모델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유리는 여러 차례 같은 용도로 재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재활용하더라도 품질이 좋은 유리로 재탄생한다”고 말합니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유리병 재활용율은 80%에 달합니다.

소우주도 유리병을 회수해 재사용하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소주회사들이 ‘초록색 표준병’을 회수하는 시스템에서 착안해 초록색 소주병에 물을 담아 판매했습니다. 지금은 ‘술병’ 이미지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해 투명 병으로 용기를 바꿨고요. 유리는 비싸지만 재사용을 통해 단가를 낮출 수 있었습니다.

도전이 가능했던 건 유리병 재사용을 권장하는 제도와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1985년 빈용기보증금제도를 도입해 유리병 회수와 재사용률 향상에 기여해왔습니다. 빈용기보증금제도는 정부가 빈 유리병을 반환받고 판매가격에 포함된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공용병 협약 어긴 기업, 유리병 쓰자는 세계

그러나 싸고 가볍고 깨질 우려가 없는 페트병이 보편화되면서 유리병은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주만 해도 2023년(편의점 CU 기준) 처음으로 페트 소주의 매출 비중(50.2%)이 병 소주(49.8%)를 넘어섰습니다.

여기에 기업이 다양한 색과 디자인의 ‘비표준용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유리병 재사용률은 줄고 있습니다. 2009년 10개 주요 소주 업체들은 소주병 재사용률을 높이고자 제조사에 상관없이 360㎖ 초록 소주병을 공용병으로 쓰기로 합의했는데요. 2019년 진로가 푸른 병에 담긴 ‘진로이즈백’을 출시하면서 이 협약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업계는 회수율이 높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들은 회수 비용 등이 증가한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세계에선 유리병을 쓰자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2018년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유럽 시장에서 모든 포장재의 재활용이 가능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미국도 일회용 제품 제조시 재활용 소재 사용 의무를 확대하고 있고요. 유리병이 각광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죠. 스페인에선 EU의 예산 지원으로 폐와인병을 재사용하는 ‘다시 와인병(reWine)’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세계적 흐름에 따라 정부는 지난 9월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무색 페트병 제조 시 플라스틱 재생 원료를 10% 이상 쓰도록 하기도 했는데요. 세계 정상이 모이는 회의에서 유리 생수병을 사용한 점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첫발일지 모릅니다.

정지은 문화평론가는 칼럼에서 ‘소독한 델몬트 주스 유리병에 보리차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시원하게 마시는 것’이 보편적인 삶의 한 기준이었다고 말했는데요. 몇 번 더 쓸 수 있는 병이 다시 일상의 표준이 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생수를 마시는 것이 ‘무해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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