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검은 수녀들'vs'말할 수 없는 비밀'…원전의 아성, 넘을 수 있을까

2025-01-22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리메이크(Remake : 과거에 제작된 작품을 새로 다시 만드는 것)와 스핀오프(spin-off: 과거에 제작된 작품을 새로 다시 만드는 것과 기존의 작품에서 파생된 작품) 모두 원전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출발한다.

제작의 전제는 앞선 작품들의 대성공이다. 다시 만들어볼 만한 상품성과 파생의 여지가 충분한 이야기, 원전의 이름값 덕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반면, '형보다 나은 아우는 없다', '잘해봐야 본전'과 같은 속편의 부담감과 전편과의 끊임없는 비교는 감수해야 한다.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하는 두 한국 영화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과 '말할 수 없는 비밀'(감독 서유민)은 이런 숙명적 부담감을 안고 관객과 만나게 됐다.

전자는 10년 전 개봉해 한국형 오컬트 영화의 시작을 알린 '검은 사제들'(2015)의 스핀오프, 후자는 18년 전 개봉해 대만 멜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 '사제'→'수녀'로 바뀌었으나…확장과 진화는 '글쎄'

한국 영화계에서 기획적으로 가장 취약한 것인 스핀오프 같은 파생 콘텐츠다. 기대 이상의 대박에 힘입어 진행된 기획인 만큼 전편을 능가하는 작품이 나오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검은 수녀들'은 사제에서 수녀로 바꾼 제목에서부터 원전의 후광을 노린 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송혜교가 연기한 유니아 신부가 김신부(김윤석)의 제자라는 것을 제외하면 '검은 사제들'과의 연결고리는 없다. 악령 씐 소년이 있고, 그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 구마 의식을 펼치는 사람들이 수녀라는 것, 즉 주요 캐릭터의 성별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 변주가 유발하는 집단 내 충돌을 이야기의 갈등 요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톨릭 교리상 수녀는 구마 의식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교단과 부딪히는 유니아를 보여주며 금기에 대한 도전을 강조한다.

'검은 수녀들'은 가톨릭의 구마, 한국의 무속신앙 여기에 서양의 오컬트적 상징 및 점술인 타로까지 끌어오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볼거리를 확장했다. 다만 이 혼종에 가까운 콜라보가 영화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이 영화에는 세계관을 창조하고 구축한 장재현 감독이 없다. '수녀가 구마 의식을 한다'는 설정만 있다. 주요 캐릭터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지만, 이야기 구조는 전편과 유사하다. 그러나 넓고 깊은 세계관을 향유하는 연출의 안목과 각본의 철학이 없는 탓에 영화는 눈요기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여성 캐릭터의 활용도 구시대적이다. 담배를 피우고 욕하는 수녀의 설정만으로 캐릭터의 파격이 이뤄지진 않는다. 또한 유니아 수녀의 전사(前史)가 생략돼 있어 악령에 맞서 소년을 지키려는 강단과 희생도 이해하기 어렵다.

각본의 뒷받침 없이 '수녀니까 가능하다'는 식의 헐거운 캐릭터 구축으로 인해 후반부 유니아의 선택과 그 희생이 주는 비장미가 보는 사람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특히 여성이 구마를 한다는 금기에 대한 도전을 결국 여성의 몸이라는 일차원적 방식으로 타파하고자 한 것은 실망스러운 결론이다.

'검은 사제들'이 탄탄한 세계관 구축을 통해 긴장감과 공포감을 조성하고 선과 악의 팽팽한 대결 그리고 인간의 무기력함까지 다뤘던 것을 생각하면 '검은 수녀들'은 떠들썩하고 거창한 구마 의식만 내세운다.

산발적인 서사로 인해 하이라이트인 구마 장면의 긴장감도 확연히 떨어진다. 후반부 약 30분가량 되는 구마 장면은 시종일관 무미건조하게 펼쳐지며 지루하게 연출됐다. 더욱이 문우진과 송혜교의 연기력이 폭발되어야 할 구마 신에서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건 치명적인 결함이다. 한국 영화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인 후시녹음의 불완전함은 돌비시네마라는 상영 여건 속에서도 극복하지 못한다.

◆ '말할 수 없는 비밀', 무난한 리메이크…클래식과 올드함 사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시간의 비밀이 숨겨진 캠퍼스 연습실에서 유준과 정아가 우연히 마주치면서 시작되는, 기적 같은 마법의 순간을 담은 판타지 로맨스 영화.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멜로 영화의 주 타겟층은 2030여성과 커플 단위 관객이다. 2007년도 제작된 '말할 수 없는 비밀'은 2008년과 2015년 두 차례나 재개봉했을 정도로 국내에 두꺼운 팬층을 자랑하는 대만 멜로 영화다.

무난한 리메이크다. 2000년대에서 2019년으로 시대 배경을 바꾸고 주인공들의 나이대를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바꾼 것만 빼면 원작의 이야기와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으며 마찬가지로 '시간의 비밀'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반전 카드로 활용한다.

또한 영화의 강점인 '음악'을 멜로 감성에 녹여내며 청춘 로맨스로서의 매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가장 유명한 OST인 '시크릿(Secret)'을 살렸으며, 여기에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를 또 다른 메인 테마곡으로 활용한다.

멜로 영화는 남녀 주인공의 매력과 호흡이 특히 중요하다. 서사가 탄탄하지 않아도 배우의 매력으로 정면 돌파가 가능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도경수의 소년미를 활용해 첫사랑의 풋풋함과 설렘을 부각한다. 도경수는 피아노를 치지 못하며, 악보도 볼 줄 모르지만 동작과 표정으로 천재 피아니스트의 감성을 표현해 냈다. 다만 청순함과 발랄함 여기에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발산했던 원작 영화의 계륜미를 생각하면 원진아의 매력과 신선함은 아쉽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클래식한 멜로 영화로서 향수를 자극하는 측면은 있지만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는 감성이 2020년대의 2030관객에게 통할지는 미지수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