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도 주목하는 연구, '양자얽힘'이 물리학의 중요 문제가 되기까지[BOOK]

2025-08-15

우연의 의미를 찾아서

폴 핼퍼 지음

강성주 옮김

위즈덤하우스

때로는 제목이 의아한 책들이 있다. 독자의 풀이가 저자의 의도와 달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출판사의 개입이 원인일 수도 있다. 후자의 사례로는 레온 레더만의 『신의 입자』(1993)가 유명하다. 레더만이 망할 입자(the goddamn particle)라고 부르던 힉스 입자 문제에 대한 책인데, 출판사가 제목에 욕설을 쓸 수 없다고 반대해 『신의 입자』(The God Particle)로 출판되었다. '신의 입자”라는 별칭은 이렇게 별 의미 없이 우연히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레더만이 책을 낸 뒤 20년 만에 드디어 힉스 입자의 존재가 실험적으로 확인됐을 때 벌어진 소동을 보면 이런 감상이 마음 한켠을 스쳐 지나간다. 정말로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원제가 'Synchronicity'인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이 『우연의 의미를 찾아서』가 되기까지 여러 고심이 있었을 것 같다. 번역자가 고백하듯 '공시성'(共時性)이란 번역어는 원제의 뉘앙스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사실 칼 융의 독특한 정신세계에서 기원한 단어이니, 적절한 번역어가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저자 폴 헬퍼는 왜 이런 단어를 내세웠을까? 인과관계는 절대로 아니면서도, 중대한 의미가 있는 연관을 뜻하는 말이 융의 신조어뿐이었다. 지난 세기 말부터 실험적으로 입증되고, 최근에는 응용기술까지 등장한 양자얽힘이 그런 연관에 해당한다. 게다가 융의 신조어가 등장한 과정이나 양자얽힘이 중요한 물리학 문제로 터를 잡는 과정 모두에 전설적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교양해설서로서 이 책의 구성은 미괄식이다. 풍부한 예화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거꾸로 이정표를 세워 볼 수 있다. 첫째, 양자얽힘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 이상으로 이 우주의 근본 구성에 대해 심오한 함의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피어 나고 있다(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에만 머무르고 있다). 둘째, 양자얽힘은 대칭성 문제와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대칭성을 중시한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많지만, 볼프강 파울리야말로 날카로운 사고의 경지를 꾸준히 보여주었다.

셋째, 양자얽힘은 고전적인 인과관계를 위배한다. 여기서 고전적인 인과관계는 “자연현상이 자신을 둘러싼 직접적인 환경의 객관적인 물리조건에 따라서만 작동함”을 뜻한다. 멀리 떨어진 환경의 영향은 시간을 두고 전달되어 직접적인 환경에 들어올 때만 작동한다. 이때 물리적 영향이 전달될 수 있는 최고 속도는 빛의 속도이다. 그렇다면 고전적 인과관계 개념은 어떻게 발달했을까, 또 빛이 속도가 있다는 생각은 어떻게 등장하고 자리잡았을까를 미리 답하는 부분이 책의 가장 앞쪽이다.

융의 아이디어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 점은 오히려 아쉽다. 융을 잘 안다고 자부하지는 못하지만, 융의 ‘공시성(Synchronicity)’은 경험자의 주관 세계에서 주관적으로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물리 세계의 현상들의 동시적 발생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양자얽힘은 객관적 물리 세계에서 객관적으로 의미 있는 현상의 동시 발생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집단무의식을 거론한 융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면 주관적 의미가 집단적 의미로 전환되고, 집단적 의미가 물리 세계를 좌우한다고까지 폭주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은 레더만이 책 제목을 고친 일이 마치 우주적 섭리가 작용한 결과라고 믿는 것처럼 너무 오컬트적이다. 헬퍼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애써 그런 폭주를 경계했지만, 처음부터 달리 서술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변명을 위해 덧붙이자면 헬퍼는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준수한 물리교양서들을 출판해왔고, 2022년 노벨물리학상은 양자얽힘을 연구한 세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