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이 글은 아래아한글 2010 버전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15년이나 묵은 프로그램이지만, 명망 있는 맞춤법 검사기를 별도로 결합해 쓸 수 있다는 장점을 살릴 수 있으니 불편함이 없다.
요즘에는 AI에게 오탈자 체크를 시킬 수도 있지만, 왜 내 맞춤법이 틀렸고 어법이 이상한지 정리된 규칙에 맞춰 설명해주는, ‘규칙 기반’ 맞춤법 검사기가 더 살갑다. 챗봇이 틀리지 않는 한국어를 구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틀리지 않았는지를 자신들은 생각해 본 적 없으니 영 친절하지 않다.
맞춤법이니 띄어쓰기니 결국은 인간이 정한 규칙이다. 확률 통계적 옳음을 ‘뽑기’보다는 여전히 규칙에 따른 판단을 되짚어 보는 편이 결이 맞는다. 인지과학 및 인공지능 발전의 두 종파 중 딥러닝 신경망으로 강화된 연결주의 방법론에 패퇴한 ‘룰 기반’의 기호주의 방법론도 이처럼 쓸모가 있다.
무엇보다 챗봇과 달리 왜 빨간 줄이 그어졌는지 그 규칙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설명이 있으니 이를 통해 차곡차곡 공부도 된다. 물론 이러한 차별점 또한 이를 원하는 사용자가 많다면 AI 서비스가 얼마든지 커버할 수도 있다. 근래의 AI 서비스 개발 방향은 전문적인 모델을 섞는 것. 돈이 보이면 온갖 방법론을 동원해 금방 만들어질 터다.
우선순위란 그런 것인데, 한글 맞춤법처럼 작은 시장 속 몇몇 글쟁이나 집착할 이런 일의 가치가 어느 정도일지, 글로벌 기업의 헤드쿼터에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
전 세계인이 쓰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나 구글 독스 대신 아래아한글을, 그것도 구버전을 쓰는 고집을 피우는 일,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에는 이런 다양성 자랑은 점점 힘들어진다. 웹도 앱도 AI 챗봇도 개별적으로 소유하는 일이 힘들어서다.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배급의 시대에 개성적 행동은 쉽지 않다.
1980년대의 게임팩은 기계만 있다면 지금도 즐길 수 있지만, ‘섭종(서비스 종료)’된 온라인 게임은 영상으로만 남는다. 마이크로소프트 렌즈라고 애용하던 스캔앱이 있었는데 올해로 종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찰칵이라는 무음(!) 카메라처럼 앱스토어에서 사라져도 이미 설치한 사람은 계속 쓸 수 있게 하면 좋겠지만, 클라우드에 의존하는 앱이라면 그럴 수도 없다. 비즈니스는 우선순위의 문제다. 윗선의 관심을 잃으면 고객의 애착 따위 사치에 불과하다.
‘구글 무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글은 멀쩡한 서비스를 수많은 희생자로 만들었다. 구글을 믿고 널리 쓰였던 구글 단축 웹주소(goo.gl)는 8월 25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웹의 정리자를 자처해 온 구글이 전 세계의 링크를 박살 낸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자 자주 이용되는 링크만은 계속 살려 주기로 한발 물러섰다.
영원하리라 믿으며 쓰던 모든 좋았던 것들은 이처럼 어느 순간 사라진다. 챗GPT 5가 나와 우르르 몰려갔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며 이전 버전인 GPT‑4o를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것은 우선순위의 문제. 서비스 업데이트도 마찬가지다. 업그레이드란 수요자의 입장일 때도 있지만, 공급자의 입장일 때도 있다. 티 안 나게 저렴한 원가나 운용비의 대체재로 바꿔 넣을 때도 있으니까.
지금 추세처럼 모든 소프트웨어가 서비스되고 구독형이 되면 언제나 제일 좋은 버전을 쓸 수 있다기보다 언제나 주어지는 대로 써야 하니 배급형이라 불려도 좋다. 앞으로의 소프트웨어에선 미니멀리즘도 개성도 자립도 쉽지 않아 보인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