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가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도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이 용어를 처음 활자화한 건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이다. 지난 1979년 IT 기업 휴렛패커드(HP)를 다룬 기사에서 여성들이 승진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표현하며 사용했다.
용어 자체는 한해 앞선 1978년에 만들어졌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뉴욕전화회사(버라이즌의 전신) 소속 여직원 매릴린 로든이 “여성의 커리어를 가로막는 건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invisible glass ceiling)’과 같은 조직적 문제”라 주장하며 이 표현을 처음 썼다. 여성을 ‘사무실의 꽃병’ 또는 ‘하등 직원’ 정도로 여기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일침을 가한 한 마디였다.

‘선명히 드러나진 않지만 엄연히 실존하는 벽’이라는 의미로 유리천장이란 표현이 각광 받기 시작하면서 쓰임도 빈번해졌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지난 2013년부터 성평등 상황을 점검하는 유리천장 지수(glass ceiling index)를 매년 산출해 발표한다. 종교계의 차별적 시각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천장(stained glass ceiling),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인들이 겪는 차별을 의미하는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 등의 변주도 등장했다.
최근 국제 스포츠계에 주목할 만한 ‘유리천장 파괴자’가 나타났다. 지난 2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차기 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커스티 코번트리(41) 짐바브웨 체육부 장관이 주인공이다. 한 세기 넘도록 ‘유럽 출신 백인 남성’ 위주로 굴러가던 IOC에서 최초로 ‘여성’이자 ‘아프리카 출신’ 위원장으로 당선돼 한꺼번에 두 개의 유리천장을 무너뜨렸다.
130년 전 근대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 기획한 올림픽은 여성을 철저히 배제한, ‘남성 위주의 축제(celebration of male virtue)’였다. 아프리카 출신 여성이 올림픽을 관장하는 IOC의 운전대를 잡은 건 그래서 더 흥미로운 사건이다.
코번트리 당선인은 앞서 오랜 기간 IOC 선수위원과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를 통해 스포츠 행정 역량과 경험을 쌓았다. 그의 당선이 기적이나 우연이 아니라 IOC를 더 나은 조직으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의 산물이라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로든은 뉴욕 명문 사립대(시러큐스) 출신으로, 입사 후 업무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도 남성들과의 승진 경쟁에서 번번이 밀렸다. 결국 임원에 오르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나는 유리천장에 갇혔다”고 절규하던 47년 전 로든이 코번트리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