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계엄으로 시작된 대통령의 내란 사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파는 이념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고, 실체적 진실은 가짜뉴스에 포위돼 있다. 대통령에게 ‘애국’과 ‘태극기’로 호명되는 극우는 법치의 근간을 휩쓸어 부수자고 거리낌이 없다. 공당의 정치인들이 부추기는 혐오도 광장의 끄트머리에서 중심으로 진격해 시민의 일상을 위협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란의 시대다.
여기에 난데없이 탈핵을 둘러싼 배신의 기미가 노골적이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은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물론 처음이 아니다. 2023년 7월에는 정책위원회에서 ‘에너지믹스 다변화를 위한 원전 활용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냈고, 2024년 3월에는 당내 에너지특별위원회가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정책 제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탈원전 기조를 당 차원에서 포기했다는 직접적이고 친절한 설명은 없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과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금지를 골자로 탈핵 로드맵을 발표했다. 2040년까지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2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성과는 미흡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2년까지 약 9%로 증가하는 데 그쳤고, 핵발전 비중도 2022년까지 약 25%로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것도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등 노후 핵발전소 자연 감축과 시설 정비에 따른 일시적 감소 때문이다. 여하간 민주당의 탈핵 기조는 지난 대선전까지 선명했다가 바뀐 것이다.
최첨단 기술로 안전하다고 줄곧 선전해왔지만, 핵발전은 위험하다. 2012년 고리 1호기 정전 은폐 사건, 2019년 한빛 1호기 출력 급증 사고, 2022년 한울 4호기 증기 발생기 누설, 2023년 한빛 5호기 냉각재 배관 결함 등을 포함해 불시 정지 건수로 드러나는 핵발전소의 위험 정황도 뚜렷하다. 최근만 따져보면 2022년 4건, 2023년 1건, 2024년 7건의 불시 정지가 보고되었다.
돈 이야기로 넘어와도 핵발전은 궁색하다. 먼저 건설비와 유지비가 막대하다. 신고리 5·6호기는 건설비만 10조원 이상이 들었다. 여기에 정기 점검, 부품 교체, 폐로 비용 등을 포함하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둘째, 사고가 일어나면 피해가 천문학적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의 복구 비용은 현재까지 약 122조원에 달하며 최종 200조원 이상이 예상된다. 사고 한 번으로 국가를 마비시킬 수 있다. 셋째, 사용 후 핵연료(방사성폐기물) 처리 비용도 상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할 시설이 없다. 처리시설은 없으면서 막대하고 관리 비용이 엄청난 쓰레기를 줄곧 만들어내는 것이다. 핵발전은 ‘사고가 없고, 폐기물 처리 비용이 없으며, 정부 지원이 계속될 때만’ 쌀 수 있다.
결국, 핵발전은 고비용·고위험 에너지원으로 지속 불가능한 선택지다. 핵발전을 고집한다면 안전에 대한 배신이고 경제성에 대한 배신이다.
이쯤 되면 찬핵은 인류의 지속 가능함을 위협하는 반란이다. 그런데도 정말 반란의 편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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