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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억만장자와 차별화되는 새로운 ‘초부유층’ 집단이 빅테크 거물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고 25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분석했다.
WSJ는 글로벌 자산정보회사 ‘알트라타’의 자료를 인용해 분석한 결과 올해 2월 기준 전 세계에 24명의 ‘슈퍼 억만장자’가 있다고 밝혔다. 슈퍼 억만장자는 500억 달러(약 71조 6000억원) 이상 재산을 가진 이들을 뜻한다.
현재 세계 최고 갑부는 4194억 달러(약 601조원)를 보유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로 조사됐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2638억 달러(약 378조원)로 2위,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이 2389억 달러(약 342조원)로 3위였다.
래리 앨리슨 오라클 회장,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세르게이 브린 공동 창업자,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슈퍼 억만장자 24명의 총자산은 3조3000억 달러(약 4726조원)로, 프랑스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수준이라고 WSJ는 전했다. 이는 전 세계 억만장자 3000여명 재산 합계의 16%에 달하는 규모이기도 하다. 16명은 슈퍼 억만장자 기준의 두 배인 1000억 달러(143조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WSJ는 이같은 데이터가 억만장자라는 기존의 부유층 개념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새로운 집단의 형성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알트라타의 분석 책임자인 마야 임버그는 “이제 억만장자 집단 내에서도 격차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슈퍼 억만장자의 주류 정체성은 ‘기술 발전으로 큰돈을 번 미국 남성 IT 기업가’로 요약 가능하다. 상위 10명 중 6명은 IT 테크놀로지 관련 기업가이고, 총 24명 가운데 여성은 3명에 불과하다. 미국 밖에 본거지를 둔 사람은 7명이 전부다.
또다른 특징은 재산 규모가 회사의 미래 가치와 연동된 주가, 미래 현금 흐름 등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억만장자인 ‘석유왕’ 존 D. 록펠러 스탠더드오일 창업자,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등 19~20세기 초부유층이 대개 산업가이며, 기계 등 유형 자산이 부의 중심이었던 것과 다른 점이다. 때문에 현 슈퍼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변동성도 매우 크다. 이날은 테슬라 주가 급락으로 머스크의 순자산이 하루 새 222억 달러(약 31조8000억원) 줄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WSJ는 “수십 년에 걸쳐 부를 축적했던 과거 세대와 달리 오늘날의 기술 중심 경제는 창업자들이 불과 몇 년 만에 막대한 금액을 모을 수 있게 해줬다”고 짚었다. 세습이 아닌 자수성가도 슈퍼 억만장자들의 특성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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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자수성가보다는 ‘독점’ ‘세금 회피’ 등이 슈퍼 억만장자의 성장을 분석하는 데 적절한 열쇳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스탠더드 오일에 대해서는 반독점법이 잘 작동하고 있지만, 테크 분야에서는 그렇지 않다”며 “이들은 기업 차원에서나 개인 차원에서나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보다 세금을 회피하는 데 능숙하다”고 말했다.
WSJ는 “소수의 기술 기업가들을 향한 부의 집중은 이들 개인에게 정책, 미디어, 사회에 있어 전례 없는 영향력을 부여한다”고 짚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 된 머스크는 우주 탐사 및 전기차 규제가 자신의 기업 스페이스X, 테슬라 등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이끌 것이란 예상을 받고 있다. 최근엔 정부 구조조정에도 큰 영향력을 지녀 논란이 됐다. 워싱턴포스트(WP)를 소유한 베이조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보유한 저커버그 등은 초부유층의 미디어 영향력을 상징한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빈부격차가 정치적 불평등을 낳고, 다시 부의 불평등을 확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SJ는 “슈퍼 억만장자 부문의 성장세는 둔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