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0일 부산에서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을 찾던 10대 환자가 14번의 수용 거부 끝에 사망했다. 해당 사건을 두고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살릴 수 있는 소중한 목숨을 잃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에서는 이미 지난 4일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28인이 병원의 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 거부를 막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응급의학회 등 의료계는 이 법안이 “현장을 무시한 탁상공론”이라며 반발하며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9구급대와 부산소방본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달 20일 오전 6시 17분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남학생이 쓰러진 채 경련 중이고 호흡은 있다는 교사의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119구급대가 16분만에 현장에 도착해 학생을 싣고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를 위주로 유선전화로 연락을 돌렸지만 대부분 병원에서 ‘소아 환자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수용이 거절됐다. 신고로부터 약 1시간 20분이 지난 뒤 15번째 접촉한 병원에 심정지 상태로 수용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이 같은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한 제도화가 시급하지만, 정치권과 의료계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한 인식차에서 발생한다.
김 의원 등은 이를 ‘병원의 환자거부’로 보는 반면, 의료계는 ‘중증응급환자를 수용할 물리적 인프라 부족, 치료 실패 시 형사·행정 책임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란 입장이다.
현행법 제48조 2는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자가 이송하고자 하는 응급의료기관의 응급환자 수용 능력을 확인하고, 응급환자의 상태와 이송 중 응급처치 내용 등을 미리 통보할 것을 명시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구급대원이 일일이 전화로 병원 수용 가능 여부를 묻는 방식이 ‘응급실 뺑뺑이’를 만든다는 시각에 입각해 있다. 이에 구급대의 전화 확인 의무를 삭제하고, 병원은 ‘수용 불가’ 사유를 중앙응급의료상황센터에 사전에 등록하도록 했다. 미리 알리지 않을 경우(사전 고지 위반) 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 해당 시스템을 보고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병원을 선정해 이송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의료계는 이를 두고 “1분 1초마다 상황이 급변하는 응급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발한다. 심폐소생술(CPR) 등 응급 처치로 눈코 뜰 새 없는 의료진이 매번 시스템에 ‘수용 불가’ 사유를 입력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의료진이 미처 ‘수용 불가’를 등록하지 못한 경우, 119구급대가 환자를 이송해 와도 병원은 법적으로 거부할 명분이 없다. 이로 인해 의료계에서는 해당 조항을 ‘119구급대원의 이송 병원 선정권’이라고 비판한다.

또 심근경색·뇌출혈 등 중증환자는 ‘가까운 병원’이 아닌 ‘적정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직행해야 하는데, 직권 선택 구조가 부적절한 1차 이송과 재이송을 늘릴 위험이 크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한응급의학회는 “결국 수용 능력 없는 병원 문 앞에서 119구급차들이 하염없이 대기하는 ‘구급차 주차장’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의 2인 당직 의무화” vs “전국 전문의 다 합쳐도 불가능”
응급실 운영 인력 기준을 두고도 견해차가 뚜렷하다. 개정안 제32조는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응급실 전담 당직 전문의’를 최소 2인 1조로, 공휴일과 야간을 포함해 24시간 배치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최종 치료를 담당할 질환군별 전문의도 당직 체계에 포함하도록 했다. 응급실에 전문의가 없어 환자를 못 받는 상황을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의료계는 이는 “수치적으로도 불가능한 요구”라며 반발한다. 대한응급의학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총 2805명에 불과하다. 전체 전문의가 한 명도 빠짐없이 전국 응급의료기관에 투입된다 해도, 법안이 요구하는 ‘24시간 2인 근무’ 기준을 맞추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력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로 응급의료센터 지정이 취소되거나, 병원이 응급실 운영을 축소·회피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더 큰 문제는 ‘풍선 효과’다. 의료계는 “부족한 응급실 전담 전문의 수를 채우기 위해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타 필수의료 전문의를 억지로 응급실 당직에 투입하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정작 낮에 진행되어야 할 외래 진료나 예정된 수술, 입원 환자 관리에 심각한 공백이 발생해 필수의료 체계 전반이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양측이 유일하게 합의한 부분은 ‘형사책임 감면’ 조항이다. 개정안 제63조는 응급처치 중 발생한 환자 사상에 대해 ‘형사처벌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면제한다’로 강화했다.
의료계도 이에 대해서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한응급의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응급의료종사자들이 형사 처벌의 두려움 없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조치”라는 뜻을 밝혔다.
문제는 제63조 외에 ‘쟁점 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개정안을 ‘환자 강제 수용법’이라고 하는데 동의할 수 없다”며 “여러 차례 대한응급의학회 등 의료계와 직접 만나 법안에 관해 설명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연내 법안 통과를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단 필요하면 공청회 등을 열어 의료계 주장을 더욱 들어보겠다”고 했다.
반면 대한응급의학회 관계자는 “법안 발의 전 김 의원과 여러 차례 만나 문제점을 지적했음에도 전혀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발의했다는 것이 더 문제”라며 “의원실은 개정안이라고 하는데 현장에서 보면 개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적한 문제가 수정되지 않는 한 결코 이 법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