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기적' 그 손 잡으려 몰린다…한국인 사랑한 1000년 성지

2025-02-05

스페인은 한국인이 유난히 좋아하는 나라다. ‘산티아고 순례길’ 열풍 덕분이 크지만, 스페인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 스페인의 이름난 도시 중에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도시를 꼽는다면 단연 바르셀로나다. 카탈루냐인의 반골 기질을 닮아서인지, 축구 클럽 ‘FC 바르셀로나’ 팬이 많아서인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워낙 알려져서인지 한국인의 바르셀로나 사랑은 유별나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직항편이 수도 마드리드는 1주일에 4회 들어가지만, 바르셀로나는 9회 운항한다. 바르셀로나 명소 중에서 몬세라트(Montserrat)를 소개한다. 최근 한국의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로 한국인이 부쩍 는 신흥 관광지다. 아니 카탈루냐인의 1000년 묵은 성지다.

톱으로 잘라낸 봉우리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 외곽에 있는 산 이름이다. 금강산이 봉우리 하나가 아니듯이, 몬세라트도 수많은 봉우리를 거느린다. 금강산이 1만2000봉이면, 몬세라트는 6만봉을 헤아린다. 몬세라트 산군이 차지하는 면적은 45㎢다. 설악산 국립공원 면적이 354.6㎢이니까 몬세라트 봉우리들의 집중된 밀도를 짐작할 수 있다.

몬세라트가 아주 높은 산은 아니다. 최고봉이 해발 1236m의 산제로니(Sant Jeroni)다. 그러나 몬세라트는 단연 돋보이는 산이다. 완만한 언덕 중간에 가파른 암봉이 벽처럼 서 있어서다. 몬세라트가 카탈루냐어로 ‘톱으로 자른 듯한(serrat) 산(Mont)’이란 뜻이다. 이름 그대로다. 톱으로 산을 깎아내기라도 했듯이 허연 바위 드러낸 봉우리들이 하나같이 기기묘묘하다.

바르셀로나가 낳은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가 몬세라트의 저 자유분방한 봉우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증거가 바르셀로나 시내에 있는 ‘카사 밀라’다. 특히 굴뚝이 몬세라트의 수상한 봉우리를 빼닮았다. 카사 밀라의 굴뚝은 훗날 할리우드 영화 ‘스타워즈’에서 클론 병사의 투구로 진화한다.

역사가 된 전설

몬세라트가 대도시 인근에 있다고 해서 동네 뒷산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 카탈루냐인에게 몬세라트는 산이기 전에 성소여서다. 무릇 험한 산은 사람을 품지 않는다. 대신 숱한 전설과 신화를 생산한다. 몬세라트가 바로 그러하다. 몬세라트는 스페인 가톨릭의 3대 성지로 꼽힌다. 가톨릭 성지로 추앙받기 전에도, 그러니까 얼추 2000년 전에도 이 거친 산자락에 비너스를 모시는 신전이 있었다고 한다. 몬세라트는 태초부터 성스러운 곳이었다.

몬세라트의 가톨릭 신화는 서기 880년 시작한다. 어느 날 몬세라트 중턱에서 어린 목동들이 동굴을 발견했다. 그 동굴에서 성모가 발현하는 기적을 경험했다. 기적에 관한 이야기는 산 아래에 전해졌고 마을 수도사들이 동굴에 예배당을 지었다. 그로부터 100년쯤 흐른 1025년. 몬세라트 기슭 해발 725m 지점에 몬세라트 수도원이 들어섰다. 신화는 이렇게 역사가 됐다. 올해는 몬세라트 수도원 건립 1000년이 되는 해다.

12∼13세기 몬세라트의 수도사들은 나무를 깎아 성모상을 만들었다. 성모상이 치유의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순례자가 모여들었다. 이윽고 몬세라트 수도원은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가톨릭 성지로 인정받았다. 1881년의 일이니까, 성모 발현의 기적이 일어난 뒤 101년째 되는 해였다.

몬세라트 여행법

몬세라트 여행은 오후 1시가 중요하다. 오후 1시에 소년 합창단 미사 공연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몬세라트 수도원의 소년 합창단 ‘에스콜라니아(Escolania)’는 1223년 창설됐다. 유럽 최초의 소년 합창단이다. 산 아랫마을의 가난한 아이들이나 고아를 수도원에서 맡아 기르다가 합창단까지 꾸리게 되었다. 소년 합창단은 지금도 산중 수도원에서 함께 생활한다. 여름방학이나 크리스마스·부활절 연휴에는 공연이 없다. 아, 토요일에도 공연이 없다. 몬세라트 여행은 시간도 중요하지만, 요일도 중요하다.

소년 합창단 미사 공연을 관람하려면 바르셀로나에서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기차에 산악열차까지 타고 몬세라트까지 올라가는 데 얼추 2시간이 걸린다. 오전 중에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하면, 수도원 관람은 미루고 푸니쿨라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바로 올라가자. 여기서 산길을 따라 1시간쯤 걸어 내려오면 몬세라트 수도원이다. 수도원 어귀 산미겔 십자가가 사진 포인트다. 암봉 발치에 걸터앉은 수도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산길은 중세 시대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길이었다.

수도원에 입장하기 전 걸음을 멈추고 살펴봐야 할 조각상이 있다.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1927~2014)의 성 조르디 조각상이다. 수비라치는 가우디에 이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지은 건축가다. 수비라치가 맡은 부분이 성당 서쪽의 ‘수난의 파사드’다. 수비라치는 음각을 자주 활용했는데, 카탈루냐의 수호성인 조르디도 음각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어느 자리에서 보더라도 성 조르디와 눈이 맞는다. 수비라치가 조각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예수도 어느 각도에서든 눈이 마주친다.

치유의 손

이제 성모를 알현할 시간이다. 소년 합창단 미사 공연을 관람한 뒤 성당 돌아보고 성당에서 나와 성모상 전용 출입구로 다시 성당에 입장한다. 예전에는 긴 줄이 섰다지만, 성모 알현 티켓을 예약 판매하면서 긴 줄이 사라졌다. 대신 예약은 치열하다.

몬세라트의 성모상은 검은 성모상으로 유명하다. 검은 성모상의 유래를 놓고 여러 전설이 내려온다. 가장 널리 퍼진 게 사도 누가 제작설. ‘누가복음’을 지은 누가가 예루살렘에서 나무로 만들었던 성모상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왔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몬세라트 공식 가이드북』은 12∼13세기 몬세라트 수도사들이 나무를 깎아 성모상을 빚었다고 설명한다.

성모상이 원래부터 검은색은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색깔이 변했다. 그렇다고 나무가 썩은 건 아니라고 한다. 수도사들은 성모상을 깎으면서 무릎에 앉힌 아기 예수도 만들었다. 성모의 오른손엔 공을 쥐어줬다. 공은 세상을 상징한다. 아기 예수 손에는 솔방울이 있다. 솔방울은 죄를 정화하는 의미다.

몬세라트 성모상은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유리관 안에 성모상을 모셨는데, 공을 쥔 오른손을 유리관 바깥으로 뺐다. 이 손 한 번 잡아보려고 전 세계에서 순례자가 몰려든다. 몬세라트의 성모상은 치유의 기적을 행한다고 한다. 그 믿음으로 반질반질 빛나는 성모의 손을 한참 어루만졌다.

여행정보

몬세라트 수도원 입장권은 한국에서 미리 사 놓는 게 좋다. 성모상 알현이 가능한 티켓은 인원 제한이 있어서다. 몬세라트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다. 수도원 입장권에 성모상 알현과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된 티켓이 어른 14유로(약 2만1000원).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55㎞ 떨어져 있다. 한국인 개별 여행자가 바르셀로나에서 몬세라트까지 가려면 여러 교통수단을 갈아타야 한다. 우선 기차(FGC). 바르셀로나 중심 ‘플라사 데 에스파냐’ 역에서 기차로 몬세라트 역까지 간다. 몬세라트 역에서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중 하나를 타고 몬세라트 수도원까지 올라간다. 플라사 데 에스파냐 역에서 ‘기차+케이블카’ 또는 ‘기차+산악열차’ 통합권을 판다. 기차+산악열차 왕복 통합권 1인 26.3유로(약 4만원).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트레킹을 하려면 산제로니봉 턱밑까지 연결된 푸니쿨라를 타야 한다. 편도 어른 11유로(약 1만6500원). 보통 편도 티켓만 끊어 산을 오른 뒤 걸어서 내려온다.

바르셀로나(스페인)=글ㆍ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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