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IT계 얼리어답터 엡손, 도쿄 아닌 나가노 지키는 사연은

2025-02-05

84년 제조 역사 고스란히 담긴 日 나가노현 스와시 본사

40년대 설립 후 1964년 도쿄올림픽 계기로 전자 산업 메카로

시대 앞서간 '최초' 제품 多, '친환경' 강조하는 경영 철학 눈길

"시계로 출발해 현재 5개 사업 분야, 지속 가능성 가치 덕분"

"생활을 이롭게 하면서도, 아름다운 스와 호를 오래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220km, 차로 세시간 가량 달려야 모습을 드러내는 나가노현 스와시. '나가노 동계올림픽'으로 유명하면서도 큰 대도심에 비해 다소 생소한 지명을 자랑하는 이곳에 IT업계의 '얼리어답터'로 꼽히는 글로벌 기업 엡손이 위치하고 있다. 프린터, 복합기, 프로젝터로 시장에 잘 알려진, 연매출 13조원을 자랑하는 엡손이 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글로벌 각국에 80여개소의 지사를 둔 엡손이지만, 여전히 이곳을 '본 거점'으로 고수 중이다. 솟아오른 마천루 속 자리잡은 여느 경쟁사들과 달리 산골에 있는 엡손에 당도하기 위해선 반드시 지나게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배경이기도 한 '스와 호(湖)'. 애니 매니아들의 성지로 꼽히는 자연 속 위치한 전자 기업은 어떤 곳일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은 바로 엡손 본사 옆 한켠에 위치한 '엡손 스와 박물관'이다. 이곳엔 지난 80여년간의 회사의 역사가 녹아있다. 스와시는 1942년대 섬유 산업 외 별도의 산업이 없었던 지역이지만, 히사오 야마자키 창립자가 가업을 이어 시계 제조 공장을 지은 것을 계기로 전자 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스와시 기후가 건조해 습도에 민감한 정밀 공업에 유리한 점도 한몫 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엡손의 세이코 시계가 스위스 오메가를 제치고 공식 타이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프린터 사업이 시작된 덕분이다. 1분1초로 승패가 갈리는, 촉각을 다투는 대회 기록을 자동 인쇄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 바로 최초 소형 디지털 프린터 'EP-101'인데 당시 기존 프린터 대비 20분의 1 전력을 사용했다. 이를 계기로 엡손은 세계적인 프린터·복합기 전문 제조사가 됐다. 해당 박물관의 동선이 시계로 출발해 프린터로 마무리된 이유다.

현재 엡손의 글로벌 매출 비중 60% 상당은 프린터 사업에서 나올 정도로 해당 분야는 회사의 주력이다. 이는 '엡손'이라는 사명에서도 알 수 있다. 관계자는 "EP((Electric Printer·전자프린터)와 SON(후손)을 결합해 만든 것이 '엡손'이다. 최근 페이퍼리스 문화로 인해 프린터가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친환경 저전력 잉크젯 프린터를 고수하고 있다. 섬유 등 여러 산업군에서 여전히 기회가 많을 것"고 했다.

엡손 스와 박물관을 둘러보다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프린터 외에도 시대를 앞선 '세계 최초' 제품들이 상당하다. 성인 키를 훌쩍 넘어서는 세계 최초 쿼츠 무브먼트 시계(1969년), 세계 최초 휴대용 컴퓨터 'HC-20'(1982년) 등이다. 1982년 개봉된 007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손목에 차고 나온 TV가 달린 시계도 바로 이곳에서 나왔다.

이른바 수십년 앞서 나온 스마트 워치인데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개발이 끊긴 제품 중 하나다. 액티브 매트릭스 액정 패널로 낮은 전력 소비와 뛰어난 가시성을 제공했으며, AA 배터리 2개로 최대 5시간 사용이 가능했다. 동시에 텔레비전과 FM 신호 수신이 가능하여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제품은 단종됐으나, 손목 시계 액정표시장치(LCD) 화면에 착안해 개발한 것이 오늘날 엡손의 프로젝터 기술이다. 매출 비중은 프린터 사업보다는 낮지만, '3LCD' 기술을 담아 글로벌 기준 50%가 넘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엡손 관계자는 "시계로 출발했지만, ▲초소형 ▲고효율 ▲초정밀이라는 세 가지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사업 영역을 뻗쳤다. 재정 성과보다 '지속 가능성'으로 고객 가치를 써내려간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세이코 엡손은 현재 프린터, 프로젝터, 산업용 로봇 , 마이크로 디바이스, 웨어러블 제품 등 크게 5개 사업군을 운영하고 있다. 세이코엡손의 2022년 회계연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3303억엔(한화 약 13조원), 951억엔(한화 약 940억원)을 거뒀다. 2023년도 실적은 매출 1조3000억엔, 영업이익 647억엔을 달성했다. 실적 외에도 회사가 중시하는 가치는 친환경이다. 이미 2023년 연말 글로벌 전 사업장에서 RE100을 달성했다. 2030년까지 전사적으로 친환경 기술 개발에 1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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