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사람】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남은 보통 사람들의 독립운동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2025-08-24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와 판결문으로만 역사에 남은 평범한 식민지 조선인 40인의 독립운동을 조명한다. 학생, 교사, 지역 유지와 소작인, 점원, 엘리베이터 보이, 비정규직 공무원, 주부, 심지어 좀도둑까지 직업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식민지 조선 땅에서 벌어진 일상 속 저항들은 보통 사람들의 작은 행동 역시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독립을 위한 작은 실천과 저항의 기록

3등 대합실에서 만세를 외친 화가 신동윤부터 만세 시위를 막으려는 원주 군수를 질책한 열여덟 소년 한범우, 식민지 교육에 동맹휴학으로 저항한 학생 정동화, 3·1운동 기념 격문을 붙인 인쇄공 송병천, 잡지 읽고 각성한 농민 안천수, 총독부 앞 만세 시위를 계획한 종교인 함용환, 불온 낙서를 남긴 엘리베이터보이 최영순, 도둑에서 독립운동가로 변신한 이제국, 게다 신고 근로보국에 나선 새댁 현금렬, 축구부로 위장한 학생 비밀결사를 만든 김철용, 조선말을 쓴다는 이유로 체포된 점원 이삼철 등은 독립운동사에서 지금껏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이름들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유명한 독립 운동가나 거대한 항일운동의 서사에서 벗어나,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 저항과 헌신에 주목한다. 일제의 식민통치 기간에 한반도에서는 글자 그대로 ‘쉼 없이’ 독립운동이 펼쳐졌다. 많은 조선인이 통제받는 식민지인의 삶과 일상적 차별 등에 분노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역량껏 독립운동을 실천했다.

제 몸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던 그들이 무엇에 분노했는지, 그 분노가 어떻게 독립운동으로 표출됐는지를 보여 주는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의 작은 목소리와 행동이 쌓여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역사적 진실을 증명한다.

4,837장의 카드에서 찾아낸 40인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서 시작한다. 이 카드는 1965년 내무부 치안국 감식계 창고에서 유관순의 수감시절 사진이 발견되면서 처음 주목받았다.

사진의 출처는 일제시기에 제작된 6,000여 장의 카드 뭉치였다. 일제는 수형자, 수배자, 감시 대상자의 정보를 카드에 적고 사진을 붙여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잡아들이는 데 활용했다.

해방 후 한국 경찰에서 보관하던 이 카드 뭉치는 1980년대 말 국사편찬위원회로 이관되며 비로소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라는 이름을 얻고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복수의 카드를 제외하고 정리된 인물 수는 4,837명에 달하며, 단순 범죄자 18명을 제외한 모두가 독립운동 관련자다.

한 뼘 크기의 작은 카드지만 그 한 장 한 장이 전하는 울림은 작지 않다. 가령 안창호는 세 장의 카드가 작성됐는데, 1925년 첫 카드와 1937년 세 번째 카드를 비교해 보면 같은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하고 달라진 모습에 그의 12년을 감히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또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는 몇몇 독립운동가 외에도 4,000명이 넘은 아주 보통의 평범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불러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 수많은 카드 가운데 작은 카드 한 장으로만 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며 새로운 독립운동의 서사를 복원한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담긴 수형 기록과 정보를 기초로, 판결문과 수사기록, 신문 기사, 관련 연구 자료 등을 함께 살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식민지 조선의 일상 속 독립운동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가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이 카드로, 오늘날 잊힌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생김새를 알고 새로운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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