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의 휴식을, 바이스로이 발리

2025-03-13

“여기가 바로 제 바이브네요.” 발리 우붓의 바이스로이 발리, 저녁 식사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말해 버렸다. 꾸따, 스미냑 등 발리의 다른 지역별 특징에 대한 설명을 듣던 참이었다.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영감이 채워지는 곳. 오롯한 몸과 마음의 호사를 바이스로이 발리에서 경험했다.

나만의 울창한 정글 뷰를 갖는다는 것. 우붓에서도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위 한적한 능선에 자리한 프라이빗하고 럭셔리한 리조트, 바이스로이 발리에서는 가능했다. 전날, 밤늦게 공항에 도착해서 마중 나온 전용차를 타고 반수면 상태에서 리조트에 도착했다. 체크인하며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의 웰컴 아이스크림을 즐긴 후 버기카를 타고 어둠이 내려앉은 길을 따라 빌라에 도착했을 땐, 발리식 전통 지붕인 알랑알랑(Alang-Alang)의 구조가 드러나는 천장이 인상적인 아늑한 공간에 또 한 번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음날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나를 반긴 것은 깊고 울창한 정글 숲.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어선지, 우기의 발리 정글이 내뿜는 신비로운 기운 때문인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문득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방에서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가면 인피니티 풀이 있고, 그 너머론 웅장한 정글이 펼쳐진다. 바이스로이 발리는 총 40개의 프라이빗 빌라와 4개의 스위트 객실로 이뤄져 있는데, 모든 곳에서 이 멋진 정글뷰를 마주할 수 있다. 고요함 속에 유일하게 리듬감을 채우는 풀벌레 소리. 이곳에서 머무는 내내 짙은 초록의 정글 숲을 바라보며 기분 좋은 적막을 누렸다.

잠이 달아나고 나니 찾아온 건 허기. 조식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아 나선 길에서도 놀라움은 이어졌다. 전날 밤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원주민의 예술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멋진 조각과 벽 장식들, 그리고 그에 걸맞은 조경까지.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도착한 올데이 다이닝 레스토랑, ‘캐스케이드(Cas Cades)’는 역시나 경이로운 정글뷰를 품고 있었다. 미고랭과 같은 인도네시아식부터 오믈렛 등 서양식, 그리고 신선한 과일과 맛있는 커피까지 빼곡한 메뉴들 앞에서 즐거운 고민을 했다. 혼밥의 친구 ‘먹방’이 아닌, ‘정글멍’을 누리며 하는 식사는 괜히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침과 점심도 좋았지만, 이곳에서 즐기는 저녁 식사는 또 다른 차원의 감동이었다. 특히, 전통 방식으로 조리된 9가지 인도네시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로열 발리니스 리스타펠(Royal Balinese Rijsttafell)’이 그 정점이었다. 왕족의 식사는 이런 것이겠구나 싶은 경험. 맛도 훌륭한데, 알고 보니 리조트 내 모든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많은 식재료를 리조트 한편에 마련된 온실과 텃밭에서 재배한 것을 사용한다고 했다.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의 신선함이 바이스로이 발리 미식의 하나의 킥인 셈이다. 맛있는 식사에 흥을 돋운 건 발리 전통춤 공연이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댄서들의 오묘하면서도 섬세한 움직임.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아내 보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건 직접 눈으로 봐야만 한다.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 날도 있었다. 안개 낀 정글을 곁에 두고 오롯이 나 자신과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닝 요가. 땀이 쏟아지던 요가의 마무리는 등을 대고 누워서 눈을 감고, 온몸의 긴장을 풀어 주며 완전한 휴식을 취하는 동작이었다. 눈을 뜨니 하늘을 배경으로 커다란 팜트리 잎이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게 ‘휴식’이란 감각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전날 ‘아코야 스파(Akoya Spa)’에서 은은한 아로마 오일의 향기를 느끼며 발리식 마사지로 피로를 푸는 것도 좋았지만, 요가 후에 느껴지는 개운함과 안정감은 또 다른 희열이었다. 요가 외에도 이곳에선 쿠킹 클래스, 칵테일 클래스, 리조트 내 헬리콥터를 이용한 투어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액티비티를 경험할 수 있다. 또, 우붓 중심가에서 차로 5분 거리 정도로 가까워서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무료 셔틀 서비스를 이용해 우붓 마켓도 마음 편히 둘러볼 수도 있다. 접근성이 좋은 바람에 ‘우붓 큰손’이 되어 버린 건 좋은 일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오늘 점심은 그냥 스킵해도 괜찮겠죠?” 우붓 미식의 하이라이트인 레스토랑 아페리티프에서 즐기는 7코스의 칵테일 페어링 디너를 앞두고 나눈 이야기였다. 비즈니스 캐주얼 드레스코드가 있다는 이야기에 트렁크에 고이 챙겨온 원피스와 샌들까지 차려입고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고풍스러운 아르데코 양식을 아름답고도 화려하게 재현한 공간에 기분이 달뜬다.

리조트 투숙객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오직 이곳의 요리를 위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소문난 미식 명소란 설명에 기대가 부풀었다. 고급스러운 빈티지 와인을 포함한 다양한 와인과 샴페인을 품은 커다란 와인 저장고가 공간 한편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전문 믹솔로지스트와 소믈리에가 최상의 맛과 페어링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이곳이 미식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여기서 맛본 장장 3시간에 걸친 칵테일 페어링 코스가 어땠냐고? 한마디로 위가 더 늘어날 수 없어서 슬펐다. 버섯, 참치, 로브스터, 오리, 양고기, 은대구 등 다채로운 식재료를 활용해 미각을 자극하는 요리가 이어지는 아방가르드 코스 메뉴를 거의 정복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마지막 디저트는 겨우 맛만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으니 말이다. 벨기에 미쉐린 레스토랑 출신 셰프, ‘닉 밴더비켄(Nic Vanderbeeken)’이 이끄는 크루가 선보인 이곳의 요리들은 훌륭한 식재료에 인도네시아의 터치를 어떻게 모던하고 창의적으로 가미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훌륭한 예시였다. 음식에 맞춰 세심하게 페어링된 칵테일과 목테일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건 두말하면 잔소리.

행복하고 호사로운 시간에도 끝은 있다. 마지막 날엔 플로팅 조식으로 잠에서 깨고, 구불거리는 정글 길을 지나 다다른 물의 사원(Tirta Empul)에서 정화 의식을 경험하고, 핀스트라이프 바에서 경험하는 칵테일 마스터 클래스와 소셜 아워로 마무리했다. 핀스트라이프 바는 금주법 시대에 역설적으로 대중화된 칵테일 문화의 정수를 담아낸 곳. 공간은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몽환적인 분위기였는데, 이곳에 들어선 어떤 투숙객은 ‘여기 정말 술 마실 맛 나네요!’라며 상기된 표정을 지어 보일 정도였다. 주류 문화 좀 즐겨 본 사람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탄성. 다크그린 컬러의 벽과 화려한 샹들리에, 최고의 시가를 모아둔 시가룸, 중후한 가죽 소파, 그리고 익어 가는 벼가 한들거리는 ‘논 뷰’까지. 일정의 마무리를 짓는 곳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곳은 없다.

매주 목요일엔 재즈 공연이, 금요일엔 발리 로컬 아티스트의 공연이 라이브로 펼쳐진다는데 그걸 보지 못하고 온 것이 못내 아쉽다. 헤드 믹솔로지스트, ‘판지 위스라완(Panji Wisrawan)’의 시범에 따라 붓고, 흔들고, 잔에 따라낸 뒤 장식까지 하고 나니 그럴싸한 칵테일이 눈앞에 완성됐다. 핑크빛 칵테일을 한 모금 음미하며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진정한 휴식과 발리식 환대를 또다시 경험하리라 다짐했다.

글·사진 김나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 협조 바이스로이 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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