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인의 한 담은 '나의 조국', 한국 청중은 더 잘 이해할 것” 지휘자 비치코프 인터뷰

2025-10-27

영국의 BBC 뮤직 매거진은 지난 4월 체코 필하모닉에 ‘오케스트라 어워드’를 수여했다. 체코필이 내놓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Ma vlast)’ 음반에 대한 상이었다. BBC 뮤직 매거진이 지난해 나온 오케스트라 음반 중 후보를 선별하면 대중이 투표하는 방식이다. 이 음반은 특별히 호평을 들었다. 영국의 음반 잡지인 그라모폰은 “춤을 추듯 넘치는 생동감” “지나친 과장은 없으며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고 평했다.

이 음반의 주인공은 상임 지휘자인 세묜 비치코프(72)다. 체코인들이 사랑하는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총 6곡으로 된 모음곡. 그중 2곡인 ‘블타바(몰다우) 강’은 세계 곳곳에서 즐겨 연주되지만, 전체 80분에 달하는 전곡 공연은 드물다. 작곡가가 뜨거운 애국심으로 보헤미아의 전설과 풍경을 그려 넣은 장대한 교향시다. 비치코프는 이 모든 풍경을 생기있고 설득력 있게 살렸다.

“사실 고백할 게 있다. 7년 전 체코필을 맡기 전에는 이 곡을 한 번도 연주해보지 않았다. 심지어 그렇게 유명한 ‘블타바 강’ 조차!”

지난달 말 중앙일보와 화상 인터뷰에서 비치코프는 뚜렷한 민속의 색채가 있는 음악에서 보편적인 정서를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휘자와 체코필은 매년 봄 ‘프라하의 봄’ 축제 개막에서 ‘나의 조국’을 연주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고, 이 작품의 해석으로 전 세계 비평가들의 동의를 얻는 데에 성공했다.

비치코프는 “이 음악은 더는 그들의 것도, 내 것도 아닌 우리의 음악. 한국인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달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체코필과 함께 ‘나의 조국’ 전곡을 연주한다.

오랜 경력의 지휘자로서 한동안 ‘블타바 강’도 연주해보지 않았다는 점이 예상 밖이다.

“기회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체코필의 상임 제안을 받는 순간부터 ‘나의 조국’ 없이는 안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 곡을 깊이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오케스트라들과 시도해 봤다. 체코 음악가들과 연주하기 전에 내 관점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곡은 체코인들에게 DNA와 마찬가지다.”

특별한 전통을 비(非) 체코인으로서 어떻게 이어받고 발전시킬 수 있었나.

“이 음악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제시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과 나의 방식이 통합되고 융합돼 우리의 음악이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났고, 녹음이 이어졌다. 우리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스메타나는 체코의 오래된 성, 장대한 자연, 보헤미아의 전설 같은 것을 음악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블타바 강’에서 그렇듯 한국인들도 거기에서 일종의 애국심을 느낀다. ‘나의 조국’은 전 세계 청중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음악은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 지금 벌어지는 일들과 여전히 연관돼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전쟁이 시작됐을 때 나와 체코필은 유럽 투어를 준비 중이었다. 침공이 목요일에 시작됐고 우리는 그다음 주 초에 리허설을 했는데 연주곡이 ‘나의 조국’이었다. 그때 이 곡이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모든 사람의 언어로 ‘나의 나라’를 표현할 수 있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조국의 의미는 달라지고, 이 음악 또한 그렇다.”

스메타나는 ‘나의 조국’ 완성 4년 후인 1884년 세상을 떠났다. 말년의 그는 청력 상실과 정신적 불안 속에 고통받았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뜨거웠던 애국심은 살아있었다. 24세이던 1848년 그는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체코의 혁명에 적극 가담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망명 시기를 거쳐 말년에 집중한 작품이 ‘나의 조국’. 삶의 끝에서 비장하게 그려낸 애국심이다.

비치코프는 러시아 태생으로 20대에 미국으로 이주했으며 1985년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 데뷔 등을 기점으로 파리ㆍ드레스덴ㆍ쾰른에서 오케스트라를 맡았던 지휘자다. 러시아에 비판적 견해를 표명하는 음악가로도 유명하다. 러시아를 떠날 때부터 체제 비판을 서슴지 않았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2023년 성명을 발표했다.

비치코프는 ‘나의 조국’ 전곡을 한국에서 연주하는 의미를 강조했다. “한국 청중은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역사상 더 크거나 강한 누군가에게 지배당했던 모든 나라는 민족주의라 불리는 자부심을 느낀다. 민족주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국제주의를 거부하는 것도, 우월주의도 아니다.”

그렇게 통용되는 정서에서 ‘블타바 강’은 자주 연주되지만, ‘나의 조국’ 전곡 연주는 드물다.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전곡 연주를 수락하도록 공연 주최측을 설득하기가 어렵다!(웃음) 청중이 이 작품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티켓을 팔지 못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한 번도 연주된 적이 없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이 작품을 알겠나? 전체 6곡 중 앞의 3곡만 연주하는 경우도 많지만 늘 부족함을 느낀다. 유명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아래에 있는 정교한 작업을 전곡에서 느낄 수 있다.”

체코필은 당신의 지휘 아래 지난해 그라모폰 ‘올해의 오케스트라’, 올해 BBC 뮤직 매거진 오케스트라 어워드를 받았다. 소감이 궁금하다.

“영광이다. 수상은 큰 특권과 자부심의 원천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들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치코프와 체코필은 한국에서 28ㆍ29일 공연한다. 29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첼리스트 한재민과 함께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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