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스 스콧, 첫 내한공연 '고양힙'…사수 카녜이 넘어서는 힙합 엔터테이닝

2025-10-26

화룡점정은 역시 '페인(FE!N)'이었다.

미국 출신 세계적인 힙합 슈퍼스타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트래비스 스캇)의 월드 투어 '서커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의 인장과도 같은 노래로, 여섯 차례 반복되고 변주되면서 점성이 생겨 점층법적으로 공연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여섯 번째 변형에서 불꽃과 불기둥이 연쇄반응을 일으키는 듯한 광경도 볼거리였다.

25일 오후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데뷔 12년 만에 첫 단독 내한공연한 스콧은 더 불온하면서 더 야생적이고 더 역동적인 공연이 무엇인지 증명했다.

K-팝과 밴드 열풍이 정점을 찍고 있는 국내에서 새삼스럽게 무슨 힙합이냐고 하는 이들도 있겠다. 스콧의 내한공연의 현대성은 왜 힙합이 여전히 힙한 음악인지 증험하게 했다.

30분 지연은 예상했다는 듯, 불평이 거의 없었던 국내 힙합 팬들의 힙합에 대한 열기가 여전하다는 것도 증거했다.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스콧의 팬들인 만큼 이날 운집한 4만8000명 중에선 국내 내로라하는 패션니스타들이 대거 포함된 듯했다.

'하이에나(HYEANA)'로 시작한 이날 공연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무대와 연출이었다. 전차 경주 등을 비롯한 빅 이벤트가 열렸던 로마의 대형 원형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타이틀을 따온 공연인 만큼 스펙터클이 대단했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현재 터만 남아 있는 공원 형식인데, 스콧은 이곳에서 공연한 뮤지션 중 한명이다. 특히 2023년 그가 이곳에서 공연했을 관객 6만명이 동시에 뛰어 주변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신고가 잇따랐다는 일화도 있다.

바위 무대 세트와 대형 직육면체 모양의 LED 네 개를 둘러싼 링 같은 구역은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형상화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곳을 종횡무진하는 스콧은 검투사처럼 느껴졌다. 10도대의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입은 그의 육체성은 이날 공연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알록달록 변하는 대형 LED 스크린의 화려한 연출과 곳곳에서 수시로 뿜어져 나오는 불기둥은 현란했다.

스콧이 DJ와 계속 소통하며 보여준 공연은 무엇보다 일방 통행의 무대 자랑이 아니어서 더 특기할 만했다. '백룸스(BACKR00MS)', '타입 싯(TYPE SHIT)', '나이트크롤러(Nightcrawle)'가 이어지는 대목에선 객석에서 자신이 직접 택한 관객 네 명을 무대 위로 올려 팀원처럼 함께 즐기기도 했다.

트랩이 가득한 '생크 갓(THANK GOD)'은 물론 감미로운 '하이스트 인 더 룸(HIGHEST IN THE ROOM)'을 비롯해 사이키델릭, 록 등 다양한 장르로부터 영향 받은 음악은 왜 그로 인해 힙합이 풍성해졌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힙합의 지루한 습관을 뒤틀고, 존중할 만한 관습을 가져와 이 장르의 관능을 빚어낸 것이 스콧이 현재 가장 핫한 힙합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고양종합운동장은 작년 8월 미국 힙합스타 카녜이 웨스트(칸예 웨스트)가 리스닝파티를 빙자한 라이브 공연을 열어 인지도를 확 높인 후 국내 콘서트계 새로운 성지로 떠오른 곳이다. 웨스트는 누구인가. 스콧을 발굴한, 즉 스콧의 사수(師授)인 셈이다. 웨스트는 한 때 힙합 최고의 쇼 비즈니스를 선보인 선구자였으나 지금은 각종 혐오적, 차별적 발언으로 예전에 비해 상당히 입지가 좁아졌다.

스콧은 웨스트가 공연했던 이곳에서 현재 힙합 최고의 엔터테이닝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걸 확실히 각인시켰다. 공연 중간 공백으로 느껴지지 않는 여백의 순간까지 포함, 연극적인 신(scene)들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의 쇼맨십은 곳곳에서 모시핏 현장이 펼쳐지게 했다. 스콧은 객석을 향해 "한국에 그렇게 즐기는 친구들이 많다며?"라고 묻기도 했다. "아름다운 나라"라는 탄성도 내뱉었다.

그로 인해 '고양콘'이라 불리는 고양종합운동장 콘서트가 이날은 '고양힙'이 됐다. 지난 21일 브릿팝 전설적 밴드 '오아시스'의 내한공연 때처럼 밖탠딩(밖+스탠딩) 존도 곳곳에서 생겨났다.

스콧은 대표곡 '구스범스(GOOSEBUMPS)'에 이어 '텔레키네시스(TELEKINESIS)'를 부르는 도중 한국 팬에게 받은 태극기를 두르기도 했고, 팬들과 일일이 악수 등을 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 맵시 넘치는 검투사가 벌이는 지독한 게임은 모두가 승자였다. 역시 이곳에서 단독 공연을 열었던 그룹 '빅뱅' 멤버 겸 솔로가수 지드래곤 그리고 그룹 '투애니원(2NE1)' 씨엘 등 K-팝 가수들의 객석 목격담도 나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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