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

2024-10-09

언젠가 지인과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처음 찾았다가 그 후 종종 들르게 된 식당이 있다. 일본에서 공부한 주인장이 내는 일본가정식 음식점이다. 골목 안쪽 대문 옆에 붙어있는 글귀에 먼저 마음이 끌렸다. ‘음식에 있어서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를 지향한다.’는 문구가 참 마음에 들었다. 가끔씩 그 집을 들락거리다 어느 날 쉐프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뜻이냐? 어떻게 이 말을 생각하게 되었냐?” 사실 이집 음식을 먹어보면 굳이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이러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뭔가를 많이 채색한 것이 아닌 순수한 맛이 은근하게 다가온다.

내가 이 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일본의 건축가 ‘쿠마 켄고’를 통해서였다. 일본을 가끔씩 다니다보니 그곳의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특히 쿠마 켄고의 작품이 마음에 와 닿았다. 주류의 흐름과 결을 달리한 그의 뭔가 삐딱한(?) 자세도 매력적이었다. 온통 노출콘크리트가 도시를 채우던 시절에 그는 나무를 택했다. 한창 잘 나가다가 일본의 거품이 꺼지면서 십년 가까이 일이 없던 시절에 오히려 ‘그곳에 순응하는 건축 즉 지어지는 장소와 행복한 관계를 맺는 건축,’ 그리고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의 철학이 깊어졌다. “건축을 할 때 하고 싶은 뭔가를 자꾸 덧붙이면 결국 그것을 망치게 된다. 오히려 하나씩 뺄 때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른바 ‘약한 건축’을 지향하는 쿠마 켄고의 작품들을 마주하다보면 그의 말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일을 그만둔 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건강관리를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세상일이란 것이 의례 그렇듯,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 등등으로 인해 술 담배와 기름진 음식은 가까이한 반면 운동은 멀리한 세월이 오래였다. 일단 내시경을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큰 이상은 없으나 당뇨 전 단계, 살짝 선을 넘은 요산수치의 결과가 나왔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요산수치를 조절하는 약을 쓰자는 주치의 선생님의 권유를 정중히 거절했다. 보통 의사 선생님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는 편이지만 당시의 그러한 결과는 생활습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약보다는 이런 것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지금껏 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했다.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를 시작 한 것이다. 술 담배부터 끊고 탄수화물은 줄이고 대신 운동은 거의 매일 했다. 몸에 좋다는 것을 챙겨 먹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것을 안 먹도록 노력했다. 집에 꽤 많은 건강보조 식품이 있지만 입에도 대지 않았다. 처음 6개월 정도는 어떻게 보면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다. 퓨린이 많이 함유된 음식은 철저히 멀리했다. 헬스장을 다니고 그 후에는 PT도 받았다. 그 결과 당화혈색소는 조금씩 하강곡선을 그리며 안전선 안쪽에 자리하게 되었다. 요산수치는 훨씬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였다. 두 달 만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일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체중도 10킬로 정도 감량이 되었다. 이것은 부수적 소득(?)이었다. 건강지표 개선에 신경쓰다보니 덤으로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빼기의 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도 배고픈 다이어트를 한 적이 없다. 탄수화물은 지금껏 적당히 먹고자 애쓰고 있지만 질 좋은 단백질과 채소를 늘 푸짐하게 챙겨먹어 허기지는 일은 없었다. 일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위스키의 세계에 입문하고 급기야 우리 전통주 만드는 시간까지 가지게 되었다. 과거처럼 폭음이 아니라 음식에 맞춰 술을 고르고 밥과 술 둘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순간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체중은 다시 살짝 올라가게 되었지만 그간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면서 각종 수치들은 잘 살피고 있다.

최근 인기를 모은 흑백요리사를 재미있게 보았다. 경연이다 보니 제한된 시간과 조건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한다. 그래서 팀 미션에서 허둥대는 일부의 모습도 비쳤지만 대체로 워낙에 잘하는 분들이라 군더더기 없이 아주 간결하게 요리를 하는 것 같았다.

박경리 선생의 마지막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말이 와 닿는다. 자꾸 뭔가 더하기를 할 것이 아니라 빼고 버려서 주변을 간결하게 해야 홀가분하게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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