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집중 뉴스를 읽으며 불꽃놀이를 듣네!

2024-10-09

선친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

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일세

타향은 낯설어도 눈은 낯익어

고향을 떠나온 지

고향을 이별한 지

몇몇 해던가

(<고향설>, 조명암 작사)

어린 시절, 서발 장대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고단한 삶을 겪으며 할머니와 단 두 분이 고향 담양에서 쫓겨나듯 떠나 순창에 닿았지만, 그곳에서도 땅 한 뙈기 없는 팍팍한 삶에 떠밀려 다시 군산으로 오셨단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만만치 않았고, 결국 배우신 목수 일을 터전 삼아 그 무렵, 머나먼 경기도 수색으로 일거리를 찾아 가셨단다.

그 추운 겨울, 곱은 손으로 나무를 매만질 때 내리는 눈송이를 보며 늘 부르셨다는 노래가 <고향설>, 즉 <고향의 눈>이다.

그러니 어찌 그 노래를 평생 잊으실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노래를 부른 가수 이름마저 백년설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데 ‘고향설’과 ‘고향의 눈’이 주는 음색은 많이 다르다. 우리에게 훨씬 정감을 불러일으킬 듯한 고유어 ‘고향의 눈’보다, 한자어 ‘고향설’이 막연하면서도 깊고 낯설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주는 까닭을 밝히는 것은 언어학자의 몫이리라.

우리는 그저 고향에서 머나먼 땅에 소리없이 내리는 눈송이의 촉감을 눈물로 녹이면 그뿐이다.

전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든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50년 전 고향을 떠나 수도 서울로 옮겨온 나를 떠올린다. 다행히 열서너 살 소년은 고향이라는 – 결코 고유어로 표현할 수 없는 – 단어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수도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고향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아야 이웃 아파트뿐일 것이다. 층간소음과 주차 문제로 삭막하기 그지없는 바람이 부는 그곳 말이다.

수도권 집중 현상은 그래서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다.

아파트 숲에서 내리는 눈은 치우기 힘든 겨울의 불청객에 불과할지 모른다. 눈이 내린다는 예고에는 어김없이 빙판길 조심, 출근길 조심이라는 경계 신호가 뒤따른다. 도시의 삶에서 눈은 향수와 그리움, 어머니와 고향의 숨결이 아니라 귀찮고 치워야 하는 존재가 된 셈이다. 그뿐이랴. 가을 바람과 봄 바람, 겨울 바람의 표정 변화는 우리를 가슴 설레게도 하고, 깊은 우수에 잠기게도 하였다. 그러나 아파트 숲에서 부는 바람은 베르누이의 정리를 따르는 자연현상일 뿐이다. 아무 숨결도, 색상도 갖지 않은 기압 현상.

어제 저녁 서울 도심에서는 수백억 원을 단 한 시간 동안 터뜨리는 불꽃축제가 열렸다. 전혀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편의점에서는 한 시간에 천문학적 매상을 올렸다는 기사가 나오고, 가장 긴 기다림의 행렬은 이동식 화장실 앞에서 펼쳐졌다는 소식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한 시간의 기쁨을 위해 열 시간의 수고도 마다하치 않는 도시인들의 곤핍한 삶이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슴속에 낭만 한 점 품지 못한 이웃들이 그 안타까움을 해원(解冤)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상이 그렇게 아플 수 없었다.

아무도 그렇게 연결하지 않겠지만, 나는 고향의 상실과 인위적 불꽃놀이를 동시에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머릿속에 고향이 떠오른 이 가을에, 전군가도에 퍼지는 저녁놀의 품 안으로 여행 한 번 가야겠다. 빠르디 빠른 KTX 대신 50년 전 준급행(완행보다는 빠르고 급행보다는 느린)보다 세 배는 빠른 군산행 서해금빛열차를 타고서.

김흥식(도서출판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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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고향 #뉴스

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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