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물든 체육계] ‘꽉 닫힌’ 울타리, 꿈도 못 꾸는 내부고발… ‘낙인’에 벌벌 떠는 선수들

2025-08-21

한국 체육계에서 보고도 믿기 힘든 폭력 사건들이 우후죽순 고개를 든다. 범인(凡人)의 눈에는 이런 물음표가 찍힌다. 사안의 비상식성만 보면 이미 세상에 드러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일들이, 유독 체육계에서만 어떻게 그 무거운 그림자 속에 갇혀 있었는지다.

누구 하나 고개를 들기 힘든 구조 때문이다. 체육계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서 ‘내부고발’은 곧 낙인과 배제를 의미한다. 구기종목 선수 출신 A씨는 “신고하면 이 판에서 영구 제명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가해자는 처벌을 받겠지만, 나는 동료 혹은 선후배를 신고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봤다.

잘못된 문제는 바로잡겠지만, 정작 신고자가 실현한 정의가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배신자 낙인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옛날부터 이어진 체육계의 경직된 서열문화 속에 폭력은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왔다. 그 속에서 직접 목소리를 낸 피해자나 이 상황을 외부에 발설한 제3자가 도리어 시스템에 부적응자 혹은 부족한 실력에 환경만 탓하는 사람으로 공격을 받는 잘못된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선수들은 지도자 및 동료들과 훈련·경기는 물론 일상생활까지 함께 해야 하는 입장이다. 내부신고자 꼬리표가 진학, 프로 지명 혹은 주전 보장 등 선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신고를 주저하는 이유다.

A씨는 “신고자랑은 친하게 지내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파다했다. 다니던 대학의 다른 체육 종목에서 한 선수가 신고를 하고 결국 팀을 나갔는데, 그 소문이 아무 연도 없던 나에게까지 들렸다”며 “모르던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내부고발자’라는 이유로 알게 된 거다. 그 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신고는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개인 종목에서 국가대표까지 지냈던 현역 선수 B씨는 내부고발 이후에 발생한 이유 없는 차별과 싸늘한 주변 시선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부당한 부분을 신고했지만, 허술한 시스템이 문제였다. 누가 신고했고, 어떤 내용을 적시했는지 해당 지도자 및 협회 임원진에게 모두 보고됐다. B씨는 “감독이나 코치님이 선수들을 다 모아놓은 자리에서 대놓고 ‘다 같은 팀인데, 자기 혼자 좋으려고 이기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식의 저격발언을 했다”며 “실수를 가장해 나를 훈련에서 교묘하게 빼놓기도 했다. 소문은 정말 빠르다. 내가 신고자라는 걸 모르던 선수들도 결국 다 알 수밖에 없다. 원래 친하게 지내던 동생들이 어느 순간 나와 대화하는 걸 불편해하는 걸 보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내부신고자 보호 자체가 불가능한 좁은 ‘바닥’도 문제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요즘 학교 폭력은 사회 전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라 그런지 교육청, 경찰 등 외부 개입 여지가 많다. 오히려 성인이 된 대학이나 실업팀, 프로팀이 문제다. 모든 이야기가 연맹 혹은 협회 내부에서 은폐되기 마련”이라는 시선을 내놨다.

이어 그는 “선수 생명 혹은 생계 등이 일종의 인질이 된다. 특히 비인기종목일수록 문제는 심각해진다. 말이 좋아 협회, 연맹 관계자이지 사실상 모두가 선후배 사이로 묶여있다. 선수들도 이걸 뻔히 다 안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가해자 측근한테 신고하라면 할 수 있겠나”라는 푸념을 늘어놨다.

침묵이 가장 안전한 생존 방식이 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내부고발이라는 경고음이 세상에 닿지 않으면, 미래의 피해자가 또 발생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공정과 신뢰의 회복을 위해, 체육계 안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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