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비급여 처방의약품 시장을 휩쓸었다. 비만 치료제 열풍이 올해도 지속되는 가운데 GLP-1 계열 약의 '요요 현상' 문제가 확인되며 장기 투약을 위한 급여화 논의에도 불이 붙었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티드)가 올해 1분기 비급여 의약품 시장 유통액 상위권을 독차지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 기준 1mg 단위가 석 달간 100억원이 넘는 유통액을 기록했고, 2mg·4mg도 각각 99억원, 9.6mg도 97억원 수준이었다. 6.8mg은 69억원으로 6위를 차지하며 위고비가 비급여 의약품 시장 1위, 2위, 3위, 4위, 6위를 모두 차지했다.
매출액도 빠르게 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위고비는 올해 1분기에만 매출 794억원을 달성하며 1분기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는 108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414억원) 대비 162.3% 성장한 수치다.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 규모가 분기 기준 1000억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고비는 시장 점유율 73.1%를 차지하며 출시 3개월 만에 시장 성장을 홀로 견인했다.
위고비는 GLP-1(Glucagon-Like Peptide-1) 유사체로,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증가시켜 체중 감소를 유도한다.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체중 감량 효과가 입증되면서 비만 치료제로도 승인받았다. 국내에서는 체질량지수(BMI) 30 이상이거나, BMI 27 이상이면서 고혈압, 당뇨병 등 체중 관련 질환이 있는 성인에게 처방이 가능하다. 전문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며,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된다.
당초 같은 성분의 당뇨병약 '오젬픽'이 국내에서 품목허가를 먼저 취득했으나 건강보험 급여 등재 협의에 난항을 겪으며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오젬픽과 위고비의 차이는 용량뿐인데, 비급여로 수익성이 좋은 비만약만 출시된 것이다.
역시 같은 회사의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인 '삭센다'(리라글루티드)는 '빅토자'라는 이름의 동일 성분 당뇨병약으로 먼저 시장에 나왔지만, 급여에 등재되지 못하면서 현재는 비만약으로만 주로 처방되는 처지다. 이조차 위고비 출시 이후 올해 1분기 매출 4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40억 원)에 비해 70% 감소했다. 2023년 기준 36%에 달했던 시장 점유율도 지난 1분기에는 3.8%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처럼 위고비가 비급여 의약품 시장을 석권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일론 머스크 등 해외 유명인이 사용하며 인지도를 얻은 점이 지적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현재의 열풍을 단순히 유명인에 대한 추종 심리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본다.
국내에서 위고비가 출시되기 전 비만 치료 약물로는 향정신성의약품이 사용됐는데, 이는 마약류로 엄격히 관리될 정도로 부작용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에 따르면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복용 시 일반적으로 입마름, 불면증, 어지럼, 두근거림, 불안감, 신경과민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정해진 기간보다 오래 복용 시에는 우울증, 의존성, 성격변화, 폐동맥 고혈압, 빈맥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식약처는 안전사용 기준에 따라 주로 4주 이내 단기 처방이 권장하고 있고, 재처방 시에도 총 복용 기간이 3개월을 넘기지 않도록 했다.
반면 GLP-1 계열 제제는 상대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없고 장기 투여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니스(NICE) 지침서에 따르면 세마글루티드의 권장 복용 기간은 최대 2년이다. 결국 큰 감량 효과를 보이면서도 이전에 사용되던 약물보다 부작용 위험도 현저하게 적다는 점이 GLP-1 계열 비만 치료제가 인기를 끄는 주요인인 셈이다.
실제로 판매 허가 전 임상시험에서 확인된 위고비 부작용은 두통, 구토, 설사, 변비, 담석증, 모발 손실, 급성췌장염 등이다. 아직 시판 초기이기는 하지만 현재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된 부작용 역시 복통과 설사 등에 그친다. 다만 국내보다 앞서 처방이 시작된 외국에서는 급성췌장염으로 인한 사망 사례 등이 보고된 바 있다.
최근 비만에 대한 인식이 이전과는 달라진 점도 비만 치료제 시장이 커진 원인으로 꼽힌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1996년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했다. 이후 서서히 비만을 개인의 의지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닌 만성질환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했는데,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비만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79%가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며 각국의 비만 가이드라인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올해 초 체중 감량 약물 개발에 대한 지침(가이던스) 개정안을 공개했는데, 비만을 '과도한 지방으로 인한 만성질환'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의학적 체중 감량'을 '이환율과 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과도한 체지방의 장기적인 감소'라고 봤다. 이에 따라 일부 선진국에서는 고도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GLP-1 비만 치료제의 급여화가 이뤄진 상태다.
세계적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일명 '비만법' 제정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 1월 '비만법 제정 및 비만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남가은 고려대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교수 등 일부 전문가가 비만 치료제 보험 급여지원을 주장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이 의원은 비만질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을 복지위 전체회의에 상정한 상태다. 제출된 비만법은 비만 자체가 질환이 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비만과 비만질환을 정의하고 예방, 진료, 치료, 연구 등을 위해 5년마다 국가비만관리종합계획을 수립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한다.
최근 위고비의 '요요현상' 문제가 제기되며 급여화 관련 논의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유럽 비만 학회'(European Congress on Obesity)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체중 감량 약을 투여 받은 환자가 투여를 중단한 지 10개월 이내에 원래 체중으로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 위고비와 무냐로 투여자들은 평균 16kg을 감량했지만 1년 안에 9.6kg이 증가했다. 약 20개월 안에 원래 체중으로 회복되는 셈이다.
연구의 공동 저자인 수잔 젭 옥스퍼드대 식단 및 인구건강 교수는 "비만 치료제는 체중 감량에 매우 효과적이지만, 복용을 중단하면 일반적인 다이어트 중단 사례보다 체중이 훨씬 빨리 다시 늘어난다"면서 "짧은 기간 약을 복용하고 다시 체중이 증가한다면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가 이 약에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아니면 (약물 중단 후에도) 장기적인 치료가 될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까?"라고 말했다. GLP-1 비만 치료제가 '마법의 약'이 아니며 환자의 행동 변화를 위한 장기적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가 발간한 '비만치료제도 보험이 되나요? GLP-1 비만치료제와 보험산업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성인 비만율은 2022년 기준 38.4%로 2013년 대비 7.8%p 증가했으며 특히 남성의 유병률이 49.6%로 같은 기간 1.3배 증가했다.
비만율 증가에 따른 세계 경제적 손실은 2020년 기준 1조9600억달러에서 2035년 기준 4조3200억달러로 확대될 전망으로,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 증가로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비만은 만성질환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지적되는데, 국내 만성질환 진료비는 2023년 기준 90조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84.5%를 차지했다.
다만 보고서는 "국내 건강보험 재정은 현행제도 유지 시 2026년 적자 전환되고 2030년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돼 비만치료제의 급여 도입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