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개막한 시즌 세 번째 테니스 메이저대회인 윔블던에는 특별한 복장 규정이 있다. 선수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만 입어야 하는 이른바 '올 화이트(all white)' 드레스코드다. 머리띠, 모자, 양말까지도 흰색이어야 하는 엄격한 규정이다. 수퍼스타도 예외는 아니다. 화려한 패션과 수려한 외모로 인기를 끌었던 테니스 레전드 앤드리 애거시(55·미국·은퇴)는 복장 규정을 따르지 못해 3년간 대회(1990년) 출전을 포기한 사건도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선수들이 '붕어빵'처럼 똑같은 옷을 입는 건 아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은 포기했지만, 디자인과 소품 등 디테일에서 차별화를 두고 개성을 뽐낸다. 스포츠 브랜드들은 후원 선수들에게 윔블던만을 위한 유니폼을 매년 특별 제작한다. 올해 윔블던에서도 선수들의 '순백 패션'은 경기 승패 못지않은 볼거리다.

여자 세계 1위 아리나 사발렌카(27·벨라루스)는 라운드넥 민소매에 스커트를 선택했다. 주 무기인 강력한 서브에 최적화된 다소 평범한 복장이다. 대신 그는 손톱을 코트색과 비슷한 초록으로 물들였다. 왼팔엔 알록달록한 팔찌를 착용했다. 그가 서브를 하기 위해 왼손으로 공을 코트에 튀길 때 화려한 손톱과 팔찌는 고스란히 중계 화면에 노출된다. 영국 테니스 '아이돌' 엠마 라두카누(23·40위)도 민소매에 스커트를 선택했다. 대신 선캡과 손목보호대 같은 소품을 착용해 포인트를 줬다. 화룡점정은 목걸이다. 십자가 모양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이 목걸이의 가격을 수천만원 대로 추정된다. 라두카누는 "플렉스(flex·뽐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선수"로 불린다.

마르타 코스티유크(23·26위·우크라이나)는 파격을 택했다. 등과 배가 훤히 드러나는 과감한 크롭티(crop tee·배꼽티)를 착용했다. 활동성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마리아 사카리(30·77위·그리스)는 원피스를 입어 눈길을 끌었다. 패션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 것이다. 보통 선수들은 경기 중 땀에 젖은 상의를 갈아 입는데, 사카리의 경우엔 상하의를 모두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미국의 '신성' 코코 고프(21·2위)는 이번 대회 출전자 중 MZ세대다운 패션 센스가 돋보인 선수로 꼽힌다. 파티 드레스를 떠오르게 하는 화려한 레이스와 리본이 달린 민소매 상의를 입어 스커트도 하늘거리는 소재여서 운동복보단 패션쇼에 등장할 법한 모습이었다.

'코트 위 패션'의 일인자는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41·미국·은퇴)였다. 2003년부터 나이키 후원을 받은 세리나는 윔블던에 출전할 때마다 코트를 런웨이로 만들었다. 2008년 대회에선 바바리코트 스타일 유니폼을 입어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패션 잡지 보그는 윔블던에서 멋진 스타일 뽐낸 유명인을 발표하며 선수인 윌리엄스를 포함했다. 남자 선수들은 옷보단 소품으로 개성을 표현한다. 라파엘 나달(39·스페인·은퇴)은 스위스 명품 브랜드(리처드 밀) 시계를 차는 것으로 유명했다. 윔블던이 올 화이트 드레스코드를 고수하는 이유는 148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 권위 메이저대회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선 엄격한 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테니스 레전드 빌리 진 킹(82)은 영국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윔블던 복장 규정 때문에 답답해 죽겠다. 모든 선수가 같은 색 옷을 입고 뛰니, 중계를 보는 시청자들은 누가 어떤 선수인지 알기 어렵다. 전통은 바꿀 수도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알록달록한 반다나(두건)이 전매특허인 디아나 슈나이더(21·15위·러시아)는 흰색 제품을 찾지 못해 두건 없이 이번 대회에 나섰다. 영국 미러는 "엄창나게 엄격한 복장 규정 탓에 팬들은 상징인 두건을 쓰고 뛰는 슈나이더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