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방 공무원 사회가 감축, 감원, 해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방성 정문에서 신임 국방부 장관(예비역 소령)에게 깍듯이 경례하던 4성 장군 브라운 합창 의장도 해고되었다. 트럼프의 심복 일론 머스크는 공무원들에게 매주마다 다섯 가지 프로젝트를 기록해서 보고하지 못하면 사퇴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일하지 않는, 쓸모없는 고목을 간추리기 위해서다.
일하지 않는 고목 같은 공무원이 있는가. 물론 있다. 공무원으로 잔뼈가 굵은 나는 알고 있다. 한국전쟁 와중에 월남한 나는 인천에 정착하여 용현동 미군 유류 창에서 소화기 검사원으로 공무원의 첫발을 들여놓았다. 이 소화기 검사원이 나중에 국방성 조달청 서부 지역 계약 사령부에서 ‘직업 안전관리 감사관(Safety and Health Specialist)’으로 보잉의 안전 관리를 감사하는 공무원이 될 것을 누가 알았을까.
나는 미군 유류 창에서 감독자의 호의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 일해 외국어 대학을 졸업했다. 군사고문단 (KMAG)에서 모집하는 통역관 시험에 합격해, 육군본부 인사처에서 민간인 고문관과 막대한 인명과 재산 손실을 감축하는 대한민국 육군의 비전투 사고 방지 업무를 지원하는 일을 했다.
한국에서 21년 공무원 생활을 하고 특별이민으로 호놀룰루에 정착했다. 주 정부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일본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고 있는데 주정부 노동청 직업안전 인사과에서 안전 검사원으로 채용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식당의 일본계 웨이트리스들이 우리 식당 접시닦이가 주정부 청소부도 아니고 안전 검사원으로 간다고 한참 동안 입방아를 찌었다.
그 후 6년을 안전 검사원, 교육 및 홍보, 안전 규정 편찬을 지냈다. 하와이 큰 섬, 마우이, 카우아이로 출장다니며 건축 공사장도 검열했다. 그 정점이 마우나케아산(Mauna Kea)의 천문대 건축 공사장 검열(중앙일보 2011년 신인문학상 참조)이었다.
하와이주 공무원들은 대개 진주만을 바라다보고 산다. 선박수리소의 연방정부 공무원들은 높은 봉급에 생활수당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의 별 따기로 경쟁이 심하다.
진주만 옆의 공군기지에 지상 안전관 모집에 응모했다. 안전관리의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인 나는 퇴역 공군 장교들을 물리치고 국방성 공무원이 되었다.
아이들이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진학한 뒤 방학 때마다 집에 왔다. 아이들 항공요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롱비치 해군 선박 수리소에 공석이 생겨 미 본토로 이주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었다. 더글러스 항공기 제작소의 공군 소속 현장 파견대에서 일하다가 진급되어, 조달청 서부 지역 계약 사령부의 부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자격이 의심되는 매니저를 도와주는 내게 시선이 몰렸다. 나의 영어 실력에 바닥이 드러났다. 공문 초안을 작성하여 상부에 제출하면 붉은 펜으로 ‘다시’라고 그어져 돌아왔다. 정관사와 부정관사, 단수와 복수 사용이 왜 그렇게 까다로운지.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의 ‘문법 도움이’도 없었다. 달구지를 끌고 나무하러 다니던 촌놈이 바윗덩어리 같은 컴퓨터의 DOS 프로그램 조작은 어려웠다.
그래서 ‘무능하면 파도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make no waves)’고 생각했다. 무사안일주의였다. 공무원은 프로베이션 기간만 지나면 무능해도 해고되지 않는 철밥통이다. 대신 일찌감치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조기 은퇴의 탈출구가 보였다. 30년 전 2만5000불의 ‘상여금(buy out)’을 받고 시원섭섭하게 은퇴했다. 돌아보면 나 같은 사람이 바로 고목(dead wood)이 아니었을까.
윤재현 / 전 연방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