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조직·인력관리 엉망…윗선 신경도 안써”
발포 체계·암매장 등 핵심 과제 밝히지도 못해
정다은 광주시의원 “해산 했지만 책임 물어야”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부실 조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5·18조사위)의 조직 관리·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증언과 자료가 공개됐다. 조사관 10명 중 6명이 활동기간을 절반도 못채우고 퇴직했고, 100억원에 가까운 활동예산이 불용 처리되는 등 총체적 부실 정황이 확인됐다.
20일 경향신문이 정다은 광주시의원을 통해 확보한 ‘5·18조사위 별정직 공무원 근무 기간’ 자료를 보면 당시 채용된 ‘별정직 조사관’ 91명 중 51명(56%)이 2년도 안 돼 사직했다.
국가 차원의 5·18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을 근거로 2019년 12월27일 출범한 5·18조사위는 2023년 12월까지 활동한 뒤 지난해 6월 종합보고서 발간을 끝으로 해산했다.
출범 당시 5·18조사위는 4개 조사과(조사1~4과)에서 일할 조사관들을 별정직 공무원 신분으로 채용했다. 조사관 정원은 과장급 4급 6명, 팀장급 5급 17명, 6급 17명, 7급 13명 등 53명 이었다. 조사관들은 5·18 발포경위, 암매장·행방불명자 등 집단 학살 사건, 성폭력 등을 직접 조사하는 핵심인력이다.
하지만 5·18조사위가 활동을 시작한 직후부터 조사관들의 퇴사가 이어졌다. 1년도 못 채우고 그만둔 조사관이 22명(24%)이나 됐다. 이중 6개월을 버티지 못한 조사관도 9명 있었다. 1년 이상∼2년 미만 근무한 조사관은 29명에 달했다.
2년 이상 근무한 조사관은 40명이었는데 이중 27명(67%)은 3년을 넘기지 못했다. 4년 동안 근무한 조사관은 12명(22.6%)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간부급은 4급과 5급이 10명이었고 6급과 7급은 2명뿐이었다.
안병철 조선대 민주평화연구원 연구원의 ‘5·18조사위원회 구성과 운영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10명 이상의 조사관 퇴직자가 나왔다. 2021년 11명, 2022년 12명, 2023년 11명 등이다. 퇴직 시점을 고려하면 매년 조사관 정원의 20%가 위원회를 이탈한 셈이다.
과거 진실화해위, 친일재산조사위 등 정부 위원회의 경우 조사관들이 활동기간을 대부분 채웠고, 추가로 기간을 연장한 사례도 많았다. 기간을 2년 넘게 남겨두고 조사관 절반 가량이 퇴직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급여나 처우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라는게 내부 증언이다. 5·18조사위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적어도 4년간은 공무원 신분이 보장되고, 급여나 처우가 좋은 편이었다”며 “여러 전문인력을 모아놓고도 조직·인력관리가 전혀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점에 그만둔 조사관도 많았다”며 “그럼에도 사무처 고위직들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조사업무의 핵심 인력들이 이탈한 탓에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했다. 퇴직자 상당수는 핵심 조사 과제인 발포 명령과 집단학살·암매장 분야를 담당한 조사3과와 조사4과에 집중됐다. 조사3과 퇴직자는 11명, 조사4과는 12명에 달했다. 특히 현장 조사를 담당하는 6급과 7급이 29명으로, 전체의 80.5%를 차지했다.
배정된 예산은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5·18조사위엔 4년간 535억원의 예산이 편성됐지만, 실제 집행된 예산은 81.6%에 그쳤다. 100억원 가까운 예산이 결국 ‘불용’처리돼 반납됐다. 인건비와 기본경비를 제외한 진상규명 과정에서 사용했어야 할 사업비(169억원) 집행률은 70%를 겨우 넘겼다.
5·18조사위는 지난해 6월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고 활동을 종료했다. 17건의 직권조사 사건 중 13건은 진상규명을 결정했다. 군의 발포 경위 및 책임소재·암매장지 확인·무기고 피습 등 정작 중요한 4건은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려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부실 조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종합보고서마저도 5.18조사위의 위원 9명 중 보수성향의 3명이 끝내 동의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정다은 광주시의원은 “조사관의 전문성이 매우 중요한데도 이들의 잦은 퇴사와 낮은 사업비 집행률은 조직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면서 “활동 종료 후 해산됐다는 이유로 5·18조사위에 대한 책임추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