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237〉일하는 인간의 재발견: 대학의 책무와 가능성

2025-09-03

현대인의 삶에서 '일'은 단순한 생계수단을 넘어선다.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 일은 핵심적인 도구다. 현대인은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고, 성취와 자아실현은 일을 통해 이룬다. 그럼에도 최근 주목받는 '조용한 퇴사' 현상은 일과 인간의 관계에 큰 이슈를 제기한다.

조용한 퇴사는 물리적 퇴사가 아니다. 최소한의 의무만 수행하며, 일에 의미를 두지 않는 태도로,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성장기회를 축소하고, 조직의 발전을 저해한다. 결국 조용한 퇴사는 조직뿐 아니라 개인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더 이상 일에 열정과 헌신을 쏟지 않는 태도는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결과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곧 일하는 인간의 본질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인간은 단순히 소비하거나 즐기는 존재를 넘어, 일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기 자신을 실현하며, 나아가 세계를 바꾸는 존재다. 그러므로 일은 인간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문제는 어떻게 현대인에게, 특히 젊은 세대에게 '일의 가치와 의미를 성찰하고 정립하도록 할 것인가'다.

여기에서 대학의 책무가 새롭게 대두된다. 대학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기관을 넘어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기 전 삶의 태도와 직업관을 성찰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場)이다. 학문적 훈련과 직업적 기술 습득뿐 아니라, 일의 본질과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는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일과 노동의 철학적, 사회적 의미를 다루는 교양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단순히 '좋은 직장'이 아니라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이 교수나 동기 및 선후배들과 함께 일의 가치와 의미를 논의하고 다양한 직업관을 존중하고 배우는 대화와 공론의 문화가 대학 내에 조성돼야 한다.

또 대학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는 현장학습, 인턴십, 진로교육에 있어서도 단순한 직무체험을 넘어, 이러한 경험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고 이것을 일의 의미로 연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최근의 경제상황은 대학생들로 하여금 취업 스펙을 쌓는 것에 집중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진로교육이나 커리어 상담을 통해 대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회적 가치와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대학차원의 제도적 장치와, 정부의 대학사업과 함께 대학 구성원인 교수 개개인의 진지한 고민과 학생들을 위한 실천적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오늘의 대학생들이 졸업과 함께 사회에 나가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호모 파베르, 즉 일하는 인간으로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도록 돕는 것은 대학의 중요한 책무다. 정부의 대학사업도 정량적인 취업률과 진로교육프로그램의 참여자 수 등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 일의 가치를 아는 행복한 사회구성원을 배출하는 것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결국 조용한 퇴사라는 현상을 단순히 MZ세대들의 유별난 특성이나 개인의 무책임한 특성, 세대 차이 등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는 일과 삶의 의미가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새도 없이 어른이 되고, 사회로 등 떠밀려진 젊은 세대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책임이자 도전이다. 대학은 이 사회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출발점이자 적극적 대안을 실행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심지현 숙명여자대 인적자원개발학과 교수 shimx013@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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