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모인 그날의 ‘깃발·응원봉·손팻말’···광장 시민의 연대·저항 경험이 역사가 됐다

2025-05-18

지난 16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다시만난세계’ 등 탄핵 촉구 집회 광장에서 들렸던 노래들이 다시 흘러나왔다. 시민 100여명이 전시장 바닥에 모여 앉아 ‘투쟁’, ‘윤석열을 처벌하라’고 외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박물관 건물 외벽에는 수십 개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민주주의와 깃발’ 전시회 개막식은 마치 지난 겨울 ‘탄핵 집회’ 현장을 재연한 것처럼 보였다.

이 전시는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 상근자들이 지난 1월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광장에서 직접 시민들에게 시위용품 기증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시민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518명의 시민·예술가들이 자신이 직접 들었던 시위용품, 직접 만든 작품 등을 기증했다. 약 2300점의 기증품이 모였고 그 중 일부가 이곳에 전시됐다.

각 기증품에는 기증자의 사연과 소망이 적힌 글귀가 함께 놓였다. ‘내 나이 92세 내 평생 저런 놈 첨 본다. 당장 윤석열 그놈 파면해!’라고 손글씨로 적힌 손팻말에는 ‘3월22일 집회에서 저희 엄마가 들었던 피켓입니다. 달라진 세계가 우리 앞에 오길, 그것을 위해 누구나 함께 하게 되길 기대합니다’라는 기증자의 설명이 담겨 있었다.

색색의 응원봉 40여개가 한 곳에서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NCT, 아이브 등 각종 아이돌 그룹의 응원봉 등이 개성을 뽐냈다. 이 응원봉들에는 ‘빛은 어둠을 뚫고 나가’ ‘윤석열 탄핵’ 등 탄핵과 파면,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예술 작품으로도 손색없는 기증품도 있었다. 미대생들이 광장의 손팻말을 이어붙여 윤 전 대통령의 얼굴을 형상화한 작품, 탄핵 촉구 집회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을 도자기 인형으로 형상화한 작품 등이 눈에 띄었다. ‘내란수괴 처벌하라’고 자수를 뜬 전시물은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유품을 연상케 했다.

전시장에 놓인 모니터에는 전시용품을 기증한 시민들의 인터뷰 영상과 함께 세종호텔 지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 거통고 조선하청 지회 등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도 흘러나왔다.

자신이 기증한 물품 앞에서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한 시민은 “이 깃발, 집회에서 정말 많이 봤는데 이거 만드신 분이세요?”라며 다른 시민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시민 신연경씨(20)도 이날 자신이 기부한 멜로디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씨는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을 위해 멜로디언을 연주했었다. 추위와 충돌로 고장 난 멜로디언들을 모두 박물관에 기부했다”며 “하나하나 적힌 설명을 보니까 집회 현장에 우리가 들고나왔던 물건들이 모두 역사의 한순간에 있었던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이들은 “탄핵은 끝이 아닌 시작이기 때문에 광장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니네 블랙리스트 우리의 명예시상식’이라고 적힌 깃발을 기증한 강주은양(17)은 “탄핵 집회를 시작으로 약자의 연대를 경험해보고 나니 이제는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들부터 떠오른다”며 “당장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시민들은 탄핵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씨(32)는 “탄핵 가결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1막이 겨우 끝난 것”이라며 “광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또 다른 시작을 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기 때문”이라 말했다.

전시 개막식의 축사를 맡은 시민 유성은씨는 “남태령에 나서기 전 정말 무서웠는데 막상 경찰에게 던져지고 나니 그때부터는 두렵지 않았다. 달려와 줄 동지들이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라며 “투쟁은 종종 패배를 겪을 수도 있지만 서로 곁을 지키며 위로한 순간들을 우리가 기억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총 3부로 기획됐다. 1부 ‘12월 3일, 어제와 다른 날들, 어제와 다른 나들’에서는 지난해 12월 3일부터 지난 4월 4일까지 광장에서 나온 다양한 의제들을 살펴볼 수 있다. 2부 ‘광장은 학교였고, 우리는 서로의 교과서였다’에서는 탄핵 집회 광장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동덕여대·한국옵티컬하이테크 집회 등으로 확대되는 과정이 담겼다. 3부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에서는 동학 농민운동에서부터 6월 항쟁까지 역사적 사건에서 등장했던 투쟁의 구호와 깃발을 돌아보며 선조들의 광장을 되새길 수 있게 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는 온라인 전시도 만나볼 수 있다. 오프라인 전시장에 미처 전시되지 못한 기증품들과 인터뷰 등이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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