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뉴런의 연결관계다

2024-11-17

2024년도 노벨과학상은 현재 인류 문명이 커다란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커다란 변곡점은 바로 기계학습을 통한 인공지능(AI)의 발현이다. 구체적으로, 2024년도 노벨물리학상은 “인공신경망으로 기계학습을 가능하게 한 기본적 발견과 발명”의 공로로 존 홉필드(John Hopfield)과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에게 공동 수여되었다. 2024년 노벨화학상은 인공지능을 통해 ‘단백질 계산 설계’에 공헌한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와 ‘단백질 구조 예측’에 공헌한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와 존 점퍼(John Jumper)에게 공동 수여되었다.

302개 뉴런 보유 예쁜꼬마선충

컴퓨터로 연결관계 파악 가능

인간 두뇌 속 뉴런은 860억개

그 연결 완전 파악할 날이 올까

정리하면, 2024년도 노벨물리학상은 우리의 두뇌 속 뉴런이라는 신경세포가 이루는 연결망, 즉 신경망을 본떠 만들어진 인공신경망에 수여된 것이고, 2024년도 노벨화학상은 거꾸로 이러한 인공신경망을 이용해 밝혀진 우리의 몸속 단백질의 원리에 수여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자연과 인공이 모종의 교감을 주고받는 것만 같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신경망은 2024년도 노벨생리의학상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중심원리

2024년도 노벨생리의학상은 마이크로RNA를 발견한 공로로 빅터 앰브로스(Victor Ambros)와 게리 러브컨(Garry Ruvkun)에게 공동 수여되었다. 간단하게 말해, 마이크로RNA란 DNA에 담긴 유전 정보를 단백질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어떤 유전 정보를 활성화 또는 비활성화할지 조절하는 짧은 RNA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생명체의 가장 핵심적인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DNA는 유전 정보를 담고 있다. 생명체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을 생성하기 위해 이 유전 정보를 이용해야 한다. 우선, DNA에 담긴 유전 정보는 전령(messenger)RNA라는 염기 서열에 복사된다. 세포핵을 빠져나온 전령RNA는 리보솜(ribosome)이라는 기관 안으로 들어간다. 리보솜 안에서 전령RNA는 단백질의 원료인 아미노산을 끌고 다니는 운반(transfer)RNA와 만난다. 운반RNA는 전령RNA의 염기 서열에 딱 맞는 아미노산을 정확한 순서에 따라 단백질 사슬에 이어 붙인 후 리보솜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DNA에 담긴 유전 정보는 단백질로 변환된다. 전문적으로, 이러한 생명체의 작동원리를 중심원리(central dogma)라고 부른다.

그런데 중심원리에는 한 가지 중요한 의문점이 존재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모두 똑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포는 그것의 역할에 따라 매우 다른 모양을 하고 그만큼 다른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두뇌 세포는 근육 세포나 장기 세포와 다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답은 똑같은 DNA에서 어떤 유전 정보는 활성화되고 어떤 유전 정보는 비활성화되는 것이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마이크로RNA다.

예쁜꼬마선충

마이크로RNA가 처음 발견된 동물은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이라고 불리는 작은 벌레다. 처음에 마이크로RNA는 단지 예쁜꼬마선충에만 존재한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곧 마이크로RNA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 존재하며 유전 형질의 발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사람과 벌레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 길이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예쁜꼬마선충에 대한 연구는 지금까지 (2024년 포함) 총 4번의 노벨과학상으로 이어졌다. 특히, 예쁜꼬마선충은 신경망과 관련해 최근에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이유는 예쁜꼬마선충이 302개의 뉴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302개라는 숫자는 뉴런 사이의 모든 연결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 숫자다. 동시에 예쁜꼬마선충은 기초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지능을 지니고 있다. 예쁜꼬마선충은 현재 뉴런의 연결관계가 완전히 파악된 유일한 동물이다.

커넥톰

전문적으로, 뉴런의 연결관계를 커넥톰(connectome)이라고 부른다. 커넥톰을 완전히 파악했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그것의 지배를 받는 생명체의 행동을 완벽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예쁜꼬마선충의 커넥톰에 관한 정보를 디지털화해 컴퓨터에 입력하면 가상 예쁜꼬마선충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 예쁜꼬마선충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 가상현실에서 가상 인간이 진짜 인간처럼 행동하듯, 컴퓨터 속 시뮬레이션에서 진짜 예쁜꼬마선충처럼 행동한다. 심지어 가상 예쁜꼬마선충을 로봇의 CPU에 입력하면 진짜 예쁜꼬마선충의 행동을 흉내 내는 로봇 예쁜꼬마선충을 만들 수 있다. 인간 두뇌의 모든 정보를 컴퓨터로 이식한 후 컴퓨터 속 시뮬레이션에서 가상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SF 영화의 아이디어가 정말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큰 문제가 있다. 인간 두뇌 속 뉴런의 숫자는 대략 860억 개다. 이 860억 개라는 숫자는 뉴런 사이의 모든 연결관계를 파악하기에 너무 큰 숫자다. 세계 인구가 대략 80억 명인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마치 세계 인구 10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연결관계를 모두 다 파악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아주 먼 미래, 인류가 인간 두뇌의 커넥톰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날은 결국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오면 인간과 인공지능은 더 이상 구분되지 않을 것이다.

박권 고등과학원·물리학부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