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끝내 '패키지딜' 거부…李대통령 만날 때 안보청구서?

2025-07-31

정부는 안보-통상을 연계한 '패키지 딜'을 시도해 협상력을 확보하려 했으나, 31일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국방비 증액 등 안보 분야는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이 결국에는 패키지 딜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2주 내 정상회담'을 앞둔 가운데 트럼프 발 안보 청구서는 이제 시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협상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한국은 관세 협상 초기부터 안보와 통상을 연계한 총론적인 '패키지 딜' 전략을 추진했지만, 미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고 분리 접근을 원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처음에는 미국도 패키지 딜에 공감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입장이 바뀐 듯 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무역·통상·안보·동맹을 아우르는 총론적 협의"(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지난 20일)를 접근법으로 설정한 건 안보 분야에서 한국의 역량 등을 고려할 때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선상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4월 초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에 대한 "대규모 군사 보호 비용"을 언급한 뒤 "무역, 관세와 관련 없는 사안도 제기하고 있다"며 "원스톱 쇼핑"(ONE STOP SHOPPING)을 언급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군대 문제는 별도의 주제이며 어떤 (관세)협상에서도 이를 다루지 않겠다"며 입장을 다소 변경했다.

실제 그는 지난 22일 일본과 관세 협상을 타결하면서도 방위비 문제를 끌어오지 않았다. 관세를 고리로 동맹 현안을 이슈화하되 막상 협상에선 이를 분리해 다루는 편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면서 상대방의 협상력을 제한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본 셈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방위비 인상 등 선거에 도움이 될 현안을 순차적으로 띄울 것”이라며 “일단은 인플레이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세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한 뒤 추후 한국에 동맹 현대화 등 안보 이슈를 본격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안보 의제는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 공동성명 등 결과물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오늘 딜은 통상 분야 중심이고, 안보 등은 한·미 정상회담이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논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의, 국방비 인상,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포괄하는 이른바 '동맹 현대화' 협의는 정상회담 의제 조율 과정 등에서 이제 본격화할 거란 뜻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을 북핵 억제 뿐 아니라 대중 견제의 축으로 재편하고, 한국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맹이 스스로 방어할 능력을 키우고, 주한미군은 대만·남중국해 유사시에 대비해 규모와 역할을 조정하는 게 게 골자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본 게임은 이제 시작"이라며 "향후 2주 안에 주한미군 운용 유연성, 북핵 문제 등을 둘러싸고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협상팀이 혹독한 대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한국의 투자 규모는) 2주 안에 이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해 양자 회담을 할 때 발표할 것"이라며 "새 대통령의 선거 승리를 축하한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을 마치 한국에 주는 선물처럼 알린 데다 한국 대선이 끝난 지 약 두 달이 지나서야 공개 축하를 한 셈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6일 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대선 승리를 축하했다"고 당시 대통령실이 밝혔지만, 정작 백악관과 트럼프 본인은 해당 통화에 대해 아무런 발표를 하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 막바지인 지난해 10월 타결된 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대해선 미국의 개정 요구가 아직 없다. 다만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방위비를 100억 달러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를 정상회담에서 본인이 직접 제기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트럼프는 지난 2018년 9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도 면전에서 방위비 문제를 들이댔다. 정상회담 이틀 뒤 기자회견에서 "(정상회담에서)미국이 3만 2000명의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데 그들(한국)은 아주 부자 나라다. 왜 우리가 내는 비용(방위비)을 배상(reimburse)해주지 않느냐고 한국에 물었다. 그들은 답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고 공개했다.

특히 트럼프가 '2주 내'로 명시한 한·미 정상회담의 시기는 8월 둘째주에서 셋째주로 예상되는 한·미 연합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UFS)’와 맞물릴 수 있다. 그는 1기 행정부 때도 연합훈련에 대해 "굉장한 양의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전쟁연습"(2018년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이라고 표현하는 등 비용 측면에서 수차례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전세계 주둔 미군의 소요 비용과 임무 등을 평가하는 재검토 작업의 결과물과 미국의 중장기 국방 지침서가 될 2025 국가방위전략(NDS)이 늦여름쯤 발표될 전망이다. 시기적으로 그 직전에 이뤄지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입장을 드러낼 가능성도 작지 않다.

서정건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조만간 이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싶어할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은 큰 틀의 원칙만 합의하고 세부 수치는 실무 협상으로 넘기는 편이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평소 스타일로 볼 때 조만간 열릴 한·미 정상회담 날짜 확정도 수단화해 '밀당'(밀고 당기기)을 시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용범 실장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에게 '다음 주라도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고 한다"며 "구체적 날짜는 곧이어 한·미 외교라인을 통해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워싱턴에서 오는 31일(현지시간) 루비오 장관과 첫 대면 회담을 앞두고 있는데 이 자리에서 회담 일정과 의제를 조율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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