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한·미·일 삼두마차는 살아남을까

2025-01-15

모든 정권은 퇴임 후 역사적으로 평가받는 유산(legacy)을 남기고 싶어 한다. 임기 중반쯤 들어서면 레거시 캠페인을 공들여 기획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의 재선은 경제, 역사적 평가는 외교·안보 업적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다. 이제 나흘 뒤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위대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는 건 그가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안보 성과로 사상 처음으로 구축된 한·미·일 협력 체제를 내세웠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겨냥한 강력한 ‘삼두마차’를 만든 걸 치적으로 든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최근 퇴임을 앞두고 고별 방문국으로 전 세계 수많은 나라 중 한국과 일본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거다.

바이든·윤석열·기시다의 합작품

트럼프시대 맞아 풍전등화 신세

한·일 국내정치도 그림자 드리워

블링컨은 지난 방한 기간 중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두 번이나 포옹을 나눠 화제가 됐다. 바쁜 외교 일정에도 일렉트릭 기타를 치고, 상황이 급박해도 촌철살인의 유머를 잊지 않는 블링컨의 격한 포옹에는 어쩌면 3국 협력 체제를 함께 만든 조 장관에 대한 고마움과 유지·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사실 3국 협력 체제의 문을 연 건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2023년 3월 야권의 반발과 비우호적인 국내 여론 속에서 바이든의 표현에 따르면 ‘용기 있게’ 도쿄를 방문하면서다. 이후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 셔틀외교 복원을 통해 3국은 중국, 러시아, 북한 등 이른바 ‘저항의 축’ 국가에 대항하는 강력한 삼두마차가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삼두마차의 바퀴를 갑자기 빼버린 것도 윤 대통령이었다. 계엄이 선포됐던 그 날 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는 어떻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느냐며 고함을 지른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는데, 아마도 그는 삼두마차의 ‘린치핀(linchpin·바퀴 축에 박는 핀으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비유)’이 빠져버리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외교 유산은 후임 정부에서 계승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이 점에서도 바이든과 블링컨은 운이 좋지 않았다. 사실 3국 협력 체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당선되면서부터였다.

정권을 교체한 대통령의 전임 정부 지우기(Anything but Biden) 현상은 차치하더라도, 우방국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경제·군사적 압박과 외국 정상과의 일대일 담판을 선호하는 거래외교는 바이든 정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인 3국 협력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살아남겠지만 발전할지는 모르겠다”는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의 말은 오바마 행정부 백악관 비서실장 출신다운 냉철한 전망일 수 있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 암울하다. 계엄·탄핵 국면에서 한국의 리더십은 무너졌고, ‘닥치고 대선’을 외치는 야당이 그간 보여줬던 북한, 중국, 러시아에 보이는 유화적 태도와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적 반감을 미국과 일본이 잊을 리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얼마 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한국의 트럼프’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느니, 주한 일본대사에게 “일본에 애정이 매우 깊다”며 미·일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이 대표의 표변에 두 나라는 의구심을 던지고 있다.

일본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총선에서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 체제는 트럼프 1기 때의 아베 체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여전히 배는 같은 방향을 향하지만, 돛은 휘청이고, 선장은 모든 정책을 선원들의 투표에 부쳐야 하는”(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상황에 처해 있다.

오는 20일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하는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은 방한 기자회견에서 “3국의 전략적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과연 그의 말발이 얼마나 먹힐지는 알 수 없다.

신년 벽두 미국 뉴욕의 한 거리에 이런 광고판이 내걸렸다. “2025년 1월 1일은 새해의 시작일 뿐! 2025년 1월 20일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January 1st is only the first New Year! January 20th is the start of a new era).”

이 문구대로 2025년은 그야말로 1월 1일이 아닌 20일 트럼프의 취임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과연 새로운 트럼프 시대에 한·미·일 협력 체제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4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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