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냄새와 고기 냄새

2024-10-14

“병실 안 냄새가 너무 힘들어. 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 암 수술 후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인 엄마로부터 퇴원 희망 의사를 처음 건너 들었을 때 당황스럽고 기가 막혔다. 대장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마치고, 먹지도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병원을 나가 혼자 살겠다는 건지. 그것도 한낱 냄새 때문에.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 속 단호한 퇴원 의사를 들었을 때 지금 한가로운 냄새 타령을 할 때인지 속으로 화를 냈다. 당신 퇴원은 누가 도울 것이며. 어떻게 그깟 냄새 때문에 온 가족을 힘들게 할 수 있냐고. 가족 그 누구도 삶을 다 바쳐 암환자 곁을 지킬 수만은 없는데, 각자 벌어 먹고살기 바쁜 처지에, 대체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고.

아주 잠깐 2인실로 옮기면 어떨지 물을까 생각했다가 결국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격주마다 청구되는 병원비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면 힘들 것 같아서. 병실 냄새 문제는 온 가족이 짊어진 돈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라 생각했다. 가만히 계시면 안 될지 묻기 직전에 문득 암환자가 머무는 병실의 하루는 얼마나 길 것이며, 반대로 주어진 삶의 시간은 또 얼마나 짧을지 겁이 나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마간의 침묵 끝에 “퇴원을 원하면 퇴원해야지. 방법 있나” 하고 에둘러 말했지만, 그 진심은 지지 아닌 포기에 가까웠다. 엄마가 유별나다고 생각했고 원망스러웠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다시 <채식주의자>를 꺼내 들었을 때 엄마의 모습을 문장으로 다시 마주했다. 소설 속 주인공 영혜가 고기 냄새를 견딜 수 없다며 가죽 제품을 모두 버리고, 남편과 잠자리까지 거부하는 장면이 그려지는 그 순간. 분명 소설 속 주인공은 엄마처럼 가족 누구도 맡지 못하는 역한 냄새의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10년 전 처음 그 부분을 읽을 때 그저 주인공의 기이한 성격과 행동을 묘사하는 구간 정도로 여겼을 뿐, 냄새를 맡는 이와 맡지 않는 이 사이의 긴장을 알지 못했다. 아마도 고기 냄새를 견딜 수 없다는 영혜의 호소를 괴팍한 성격 문제로 환원한 순간부터 이 책을 마치 기이한 묘사를 담은 소설 정도로 평가하고 말았던 것 같다. 이상한 부부와 이상한 집안에 관한 이야기 정도로. 당장 악취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암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아직도 냄새를 맡지 않는 존재다. 나는 여전히 소설과 현실 속 두 여성이 괴로워하는 절박한 냄새의 괴로움을 잘 알지도 맡지도 못한 사람 그대로이다.

책을 덮고 캄캄한 방구석에 기대어 엄마를 영혜에 빗대어 생각했다. 나는 언제까지 내 엄마가 호소하는 냄새를 모른 척할 수 있는 걸까. 병원의 냄새가 힘들다고 말한 엄마가 이기적인 게 아니라, 엄마를 괴롭히는 냄새를 무시하는 내가 이기적인 건 아닐까. 마땅한 삶의 대안이 없음에도 한사코 퇴원을 바라는 엄마가 호소하는 병실 냄새는 얼마나 처절한 것일까. 문득 엄마가 온 힘을 다해 호소하는 냄새의 괴로움을 맡지 못하는 내 코가 영혜 가족과 똑 닮은 코임을 깨달은 순간 몹시 초조해졌다. 나는 아무리 숨을 쉬어도 두 여성이 저릿하게 맡았던 죽음, 소외, 불안 가까이 피어오르는 그 냄새를 맡지 못한 채, 찬 공기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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