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적 세계관에 빠진 KBS 시청자위원회, 주옥같은 어록의 주인공들을 다시 소개합니다

2025-05-16

탄핵 이후에도 윤석열의 그림자가 한국 언론을 어떻게 좀먹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KBS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된다. 지난 1월 이 지면을 통해 윤석열의 내란 시도에 대해 ‘내란’이란 표현을 쓰지 말기를 요청하거나, 동성애 혐오적인 발언을 한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들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해당 칼럼 말미, 더 많은 시민들이 지상파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을 더 자주 열람하길 요청하며 “헛소리를 하면 그것이 회의록으로 남아 영원히 모두의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더 큰 두려움”이 KBS 시청자위원들에게 생기길 바랐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고 윤석열은 탄핵됐지만, 4월 희의록 속 KBS 시청자위원회는 두려움을 갖기는커녕 훨씬 노골적으로 극우적 세계관을 설파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에 KBS의 국장급 인사들은 쩔쩔매며 개선을 약속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미디어오늘이나 미디어스 같은 미디어 비평 매체에서 이번 회의록에 나온 발언들의 문제를 다루긴 했지만, 좀 더 포괄적으로 그들의 지난 발언까지 묶어 소개할 필요성을 느끼는 건 그래서다. 반쯤 밀실에서 권위와 권력을 무책임하게 휘두르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밝은 광장에서의 조리돌림이다.

다양성의 이름으로 소수자 혐오하고 극우세력 옹호하기 – 홍승철 위원(사단법인 행복을 나누는 복지법인 이사장)

지난해 12월 회의록에서 KBS <다큐 인사이트> ‘이웃집 아이들’에 대해 “동성애 커플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고, 남자와 남자끼리, 여자와 여자끼리 결혼해도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그런 인식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공영방송 KBS가 했다는데 문제가 있다”며 동성애 혐오 발언을 했던 홍승철 위원은 이번 4월 회의록에서 더더욱 전방위적인 어록을 남겼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극단주의자들의 문제를 다룬 KBS <추적60분> 1401, 1402회에 대해 “정확성, 균형성, 다양성 측면을 보았을 때 해당 프로그램은 한쪽 편(탄핵 반대파) 사람들을 비정상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로 비하하는 그런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방송에선 법원 폭동을 일으킨 뒤 “언론에서 우리를 폭력 극우라 할 까봐 걱정”이라는 유튜버가 등장하는데, 나로선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고 탄핵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정하며 법원에서 폭동을 일으킨 이들을 어떡해야 그 반대편만큼 정상적으로 그릴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홍승철 위원이 말하는 균형과 다양성은 실제로는 편협하기 그지없는데, <다큐 인사이트>를 비판하던 당시에도 “동성애 반대하는 쪽의 의견도 방송에 나가야 하지 않느냐”고 따진 바 있다. 그런 기준이라면 우리는 TV에서 숨 쉬듯 나오는 이성애를 보며 왜 이성애에 반대하는 의견은 나오지 않는지 의문을 가져야 할 테지만, 그는 자신의 모순을 모르는 듯하다. 본인이 말한 그 다양성을 위해 동성애에 대한 재현이 필요한 것이며, 그러한 균형과 다양성을 해치는 극단주의적 세계관과 폭력을 고발한 것이 <추적60분> 보도였다. 물론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만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제가 많고, 절대다수 국민이 선거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믿는 홍승철 위원의 세계에서 극우발 부정선거 음모론은 동등하게 다뤄야 할 정치적 주장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윤석열 정권의 KBS 수신료 분리 징수에 대한 발언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회의 당일 수신료 분리 징수가 철회되며 축제 분위기인 중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 위원의 짧은 소견으로는 오늘날 이런 KBS가 어려움을 겪게 된 이유는 (중략) 전반적인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들에 대해서 시청자들이 일방적이고 편파적이라고 상당한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결국은 KBS 수신료 분리 징수까지 이르게 되었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을 위한 수단이었던 수신료 분리 징수를 KBS의 좌편향적 보도 탓으로 돌리는 그의 일관되게 왜곡된 현실 인식을 이제 와 바꾸긴 어려워 보인다. 다만 자기 말대로 “짧은 소견”인줄 알면 그냥 입을 다물어도 좋을 것이다.

의혹은 내가 제기할게, 입증 책임은 KBS가 지도록 해 – 이상기 위원(The AsiaN 발행인)

홍승철 위원이 자신의 신념으로 KBS 보도를 통제하려는 일관된 확신범이라면, 전 한국기자협회장 출신이기도 한 이상기 위원은 안일한 소리를 생각나는 대로 툭툭 내뱉는 느낌이다. 가령 지난 12월 회의에서 갑자기 10초 발언 기회를 요청하며 “지금 우리 군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으니 ‘군심’을 잡아줄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하나 준비해주면 좋겠다”는, 아무에게도 도움 안 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식이다. 그런 그가 최근 부정선거 음모론, 특히 이영돈 PD의 주장에 꽂힌 상태라는 걸 최근 회의록들을 보면 알 수 있다. 3월 회의록에서도 이상기 위원은 회의 전에 모니터링한 사안이 아닌 추가로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사전 선거 부정 의혹이 계속 높아지고” 있고 “어젯밤에 한 이영돈 PD 것”도 보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도 (KBS가) 한번 조금 더 논리적이고 그다음에 정보를 가지고 다루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자신이 극우 논리를 단순 반복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강변하고 싶었는지, “(부정선거를) 제기하면 음모론자라거나 아니면 극우라 그럽니다. (중략) 저는 극우라는 소리를 들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짚고 그다음에 문제를 풀어가야 됩니다”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본인이 아는 대만 기자에게 “너희들의 선거와 개표 제도를 한국에서 따랐으면 좋겠다”던 말대로, 의혹 해소를 위한 그의 제언은 전한길을 비롯한 수많은 음모론자들이 공염불처럼 외는 대만식 수개표를 하자는 주장으로 소급한다. 전자기기 사용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의혹에 대해 선관위는 이미 다 반박했다. 그럼에도 한 치의 의혹을 남기지 않기 위해 대만식 수개표를 하자는 주장은, 아무리 선진 우편 시스템이 있고 오배송이 없었어도 내가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믿을 수 없으니 스스로 편지와 택배를 상대방 집까지 가져다주겠다는 소리나 다를 바 없다.

4월 회의록에서도 6.3 조기 대선 보도와 관련해 “사전선거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면 그걸 다 끝까지 감시해 가지고 표가 잘못된 결과가, 뒤집힌 결과라든지 아니면 내 표가 죽어서 나온다든지 이런 일이 없도록 KBS가 이번에는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한 이상기 위원은, 앞서 홍승철 위원의 <추척60분> 비판에 호응해 30초 추가 발언을 요청하며 방송이 “민 의원이나 황 전 총리 이런 사람이 아니고, 예컨대 이 문제를 오랫동안 지적한 사람, 이영돈 PD라든지 아니면 공병호 이런 분들”을 취재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기틀을 세우고 널리 알려온 민경욱과 황교안으로서는 이미 언론인으로서 신뢰를 잃고 퇴출 된 뒤 이 떡밥을 뒤늦게 물고 부활하려는 이영돈이 자신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꽤 억울하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기자 출신 위원의 후배 사랑?

번외편. 극우는 없다? – 노현숙 위원(건국대 글로컬캠퍼스 교수)

말만 그럴싸하게 윤색했을 뿐 ‘Stop The Steal’(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의 구호) 수준의 발언을 한 홍승철, 이상기 위원과 노현숙 위원을 함께 묶는 건 억울한 일일지 모른다. 그가 지난 12월 “‘내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객관적 검토가 필요한데 그에 대한 부분이 미흡했던 점이 있던 것 같다”는 말로 논란이 됐던 걸 떠올려도 그러하다. 회의록 속의 그는 국내 보도보단 거의 매달 국내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보도가 좌편향 된 것에 대해, 더 정확히는 좌편향 된 CNN, BBC, 뉴욕타임즈의 관점을 보도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편이다. 다만 3월 회의록에서 그는 트럼프에 대한 ‘극우’라는 표현 역시 좌편향 매체의 관점이라고 지적하며, “극우는 정확하게 말하면 폭력까지 동반이 되어야 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극우가 없”다고 주장한다. 3월 회의록이니 4월에 벌어진 윤석열 지지자들의 중국인 상인에 대한 욕설과 폭언에 대해 알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미 위험 수위에 다다른 윤석열 지지자들의 혐중, 반여성주의적 세계를 보면서도 극우가 없다는 건 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일까. 이미 1월에 벌어진 법원 폭동을 보고도 이런 말을 한다면, 이건 좌편향 우편향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인식 자체가 안 되는 문제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그가 그토록 좌편향 된 해외 및 한국 언론 지형의 불공정함을 주장하는 만큼, 그를 시청자위원으로 추천한 자유언론국민연합의 5월 11일 논평 한 구절은, 그래서 함께 음미해볼만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김문수다.

그는 이 땅의 충무공이다.

그는 깊은 밤을 건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이 나라를, 다시 새벽으로 이끌 사람이다.”

이게 노현숙 위원이 생각하는 편향되지 않은 공정한 기준이라면, 왜 홍승철, 이상기 위원의 발언을 들으면서도 한국에 극우가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알 것 같다.

이미 지난 1월에 다뤘던 대상에 대해 굳이 한 번 더 비판하는 게 강도만 높인 동어반복처럼 보일 수 있겠다. 다만 외면할 수 없는 무거운 사실 하나. 현재 활동 중인 32기 KBS 시청자위원회의 보장된 임기는 2026년 8월 31일까지다. 그때까지 반복될 불의의 언어 앞에서 비판 역시 반복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위근우>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