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민기] 아침마다 언니·오빠들이 책 읽어 준다고?…시골 학교에 무슨 일이

2025-04-23

장수계남초, 지난해 '따뜻한 아침에 책 한 권' 도서 프로그램 시작

고학년 선배들, 저학년 후배들 위해 책 고르기부터 읽기까지 직접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여기서 그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또 하나 새로운 기획을 준비했다. 전국적인 유행뿐만 아니라 전북에서 '핫'한 현장이 있다면 바로 출동한다. 이것이 우리의 임무다.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얘들아, 오늘 내가 읽어 줄 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야."

세계 책의 날인 23일 장수계남초 5학년 박찬희(11) 군이 옆구리에 초록색 표지의 책 한 권을 끼고 3학년 교실을 찾았다. 박 군이 교실로 들어오기 전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이 박 군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박 군은 익숙한 듯 동생들 앞에 앉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또박또박 책을 읽어 나갔다.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책 페이지 수만 52쪽, 책 읽기는 7분간 이어졌지만 그 누구도 엉덩이 한 번 안 떼고 책에 집중했다. 고학년 선배라도 앞에 나와 책을 읽는 게 부끄러울 만도 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끝까지 용기 있게 읽은 박 군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사실 장수 계남초는 지난해부터 따뜻한 아침에 책 한 권을 줄여 '따아책'이라는 도서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교내에서 문해력 관련 독서 교육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새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매주 수요일 아침 오전 8시 45분부터 딱 15분간 진행한다. 저학년과 고학년을 한 팀으로 묶어 고학년 선배들이 직접 책을 선정해 저학년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방식이다.

박 군이 이날 읽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책도 직접 선정한 것이다. 박 군은 "이 책은 나무가 소년에게 아낌없이 나뭇가지부터 사과, 줄기, 밑동까지 다 주는 게 감동적이라서 골랐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하니(9·초등학교 3학년) 양은 "나무가 소년을 위해서 다 해 주면서도 행복하다고 하는 게 감동적이고 재미있었다. 아침마다 언니, 오빠들이 책을 읽어 주면 졸렸던 기운을 깨게 해 주는 것 같다. 계속 언니, 오빠들이 책을 읽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 줄지 고민하는 선배들의 모습과 선배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후배들의 모습에서 사랑스러움이 묻어져 나왔다. 고학년은 책 읽어 주는 게 어색해 부담스럽기도 하고 저학년은 책 내용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학년, 저학년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도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도서 담당 양지연 교사는 "저학년 아이들은 고학년 언니·오빠들이 교실에 와서 그림책 읽어 주는 걸 정말 좋아한다. 책 내용도 재미있고 자신들을 찾아와 준다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면서 "고학년은 처음부터 즐거워하는 아이도,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읽어 주는 걸 보면서 익숙해지는 듯하다. 매주 실시하다 보니 점차 부담감은 잊고 편하게 읽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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