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영원히 기억되지만 울림은 사람에게서 나왔다"
야마모토·오타니·스미스…누구도 혼자 영웅은 아니다
동료애·책임·헌신·사랑…진짜 영웅들의 숨은 이야기
[서울=뉴스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미국프로야구 월드시리즈가 끝났다. 역대 최고의 명승부. 숱한 영웅과 기록이 탄생했고, 숫자는 쏟아졌다. 승자와 통계는 영원히 역사로 남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가세한 미국과 캐나다의 최근 갈등도 흥행에 한몫을 했다. LA 다저스는 박찬호 시절부터 한국 팬들의 홈 팀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토론토로 전향한 팬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를 단순히 승패와 기록, 정치와 국민정서의 관점으로만 평가한다면 진짜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 숫자는 영원할 지 몰라도, 진정한 울림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이번 시리즈가 보여준 가장 위대한 장면은 팀워크, 신뢰, 책임 그리고 사랑이다.
거기에 승자와 패자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숫자 뒤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들이 디지털 시대에 팬들의 마음을 더욱 깊게 울렸다. 야구를 오래 사랑한 기자로서, 이들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한 사명감에 펜을 든다.
◆ LA 다저스…믿음과 책임의 언어
일본인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월드시리즈 MVP다. 한미일 프로리그 유일하게 3년 연속 투수 3관왕을 차지하고 미국에 진출한 그는 월드시리즈 최초로 원정경기 3승의 주인공이 됐다. 선발 등판한 다음날 2.1이닝을 던진 것도 사상 처음이다.

이런 그도 7차전 마운드에 오르기 전 불안감에 몸서리쳤다. "솔직히 오늘 던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불펜 투구를 하면서야 '내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비로소 생겼다"고 털어놨다. 이는 겸손으로 포장된 승리 코멘트가 아니다. 세계 최고의 경기, 최종 7차전의 압박 속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과 치열하게 맞선 한 인간의 진솔한 고백이다. 그는 인터뷰의 마지막을 "우리 팀과 함께 해서 행복하다"는 말로 끝냈다. 이런 그에게서 MVP나 승리의 영광보다 소중한 동료애가 묻어난다.
7차전 연장 11회 역전 홈런의 주인공 윌 스미스는 '헌신'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이건 우리 모두의 싸움이었다." 그의 한 방으로 역사는 바뀌었다. 하지만 그 영광은 개인이 아니라 팀의 것이란 말이었다.

역대 7차전에서 처음으로 9회 동점 홈런을 친 미구엘 로하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홈런을 치려고 한 게 아니다. 패스트볼을 기다렸는데 슬라이더가 들어왔고, 그저 가운데로만 보내려고 했다"며 그 때를 돌아봤다.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았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는 후배인 야마모토에 대한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야마모토는 누가 뭐래도 세계 최고 투수다." 자신의 성과보다 동료의 위대함을 먼저 말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이 시리즈의 맥을 짚는다. "(투수 로테이션을 놓고 누군가는 미쳤다고 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선수들을 믿었다. 이 승리는 우리 팀이 보여준 열정과 끈기의 결과다." 그의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다. 2년 연속 우승은 감독이 요구한 이상을 해낸 선수들의 책임감과 집중력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헌액의 표시였다.
◆ 토론토 블루제이스…패배 속에 피어난 연대
승자의 목소리에 묻혔지만, 토론토 선수단의 인터뷰에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역대 포트스시즌 한 시즌 최다 안타(30개) 신기록을 세운 어니 클레멘트는 "한 시간이나 울었다"면서도 "이 팀이 너무 좋다. 매일 출근하는 게 즐거웠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비록 졌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7차전 9회 아웃카운트 2개를 남겨놓고 동점 홈런을 맞은 마무리 제프 호프먼은 "내가 단 한 개의 공으로 우리 모두에게 돌아가야 할 월드시리즈 반지를 뺏겨버렸다"라며 책임감과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전설' 맥스 셔저는 뜬금없는 사랑 고백을 했다. "나는 41세이고, 내가 이만큼 야구를 사랑하는 줄 예전엔 몰랐다. 내 야구 사랑이 동료들을 통해 다시 불타올랐다." 베테랑이 남긴 말 속엔 진심과 감동이 배어 있었다.

패장 존 슈나이더 감독은 짧지만 울림 있는 한 마디를 남겼다. "팀원들이 서로 진짜 좋아하고 아낀다. 이런 그룹은 흔치 않다." 패배 속에서도 조직 전체가 보여준 연대와 진심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몇 단어로 정확하게 표현했다.
◆ 각본 없는 드라마…숫자 뒤에 감춰진 이야기
다저스와 토론토 선수들이 남긴 스토리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불안과 책임, 동료에 대한 존경과 헌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 그리고 패배 속에서도 피어난 사랑과 신뢰가 경기장 안팎을 가득 채웠다.

팬들은 디지털로 하이라이트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마운드에서 던진 공은 기록으로 남겠지만, 라커룸에서 서로를 격려한 한 마디는 동료와 팬들의 가슴에 남는다. 야마모토의 불안과 투혼, 오타니의 존경, 스미스의 집념, 로하스의 겸손, 로버츠 감독의 믿음, 토론토 선수들의 눈물과 사랑이 모두 모여 이번 시리즈의 진짜 드라마를 완성했다.
zangpab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