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 최영준 고려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최근 국회에서 내년도 HPV(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의 남자 청소년 지원 확대를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현 정부 국정과제인 만큼 중요성과 시행 여부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소아의 감염 질환 예방을 위해 정부가 18종의 백신을 무료 접종하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소아의 감염 질환 예방 수준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하다. 우수한 소아 감염 질환 예방 성적 가운데 아쉬운 점도 있다. HPV 질환과 암 발생에 대해 남자 청소년만이 예방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점이다. 18종의 백신 중에서 HPV 백신만 유일하게 여성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지원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건강 여성 첫걸음 클리닉 사업’의 목적으로 HPV 접종을 시작한 것이 그 배경이다. 이로 인해 HPV 백신은 여성이 맞는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인식은 짙어지고 남성 청소년의 HPV 예방은 상대적으로 글로벌 예방 추세에 뒤처져 있다.
주요 OECD 국가들보다 수년에서 10년 이상 남성 청소년의 HPV 감염 예방이 늦어지는 결과는 질환의 역학으로 나타난다. 남성의 HPV 질환과 관련 암의 발병률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적극적인 예방사업으로 여성 HPV 감염률이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HPV는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남녀 모두에게서 항문암, 외음부암, 구인두암의 원인이 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남성에서 많이 발병하는 특정 HPV 암은 여성 자궁경부암 발병을 앞섰다. 국내도 마찬가지로 남성 HPV 감염 질환과 암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이유로 OECD 38개국 중 33개국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HPV 예방접종을 지원한다. 특히 호주는 2035년까지 세계 최초로 자궁경부암을 종식할 것을 선언했다. 우리나라보다 10년 앞서 HPV 예방사업을 시작했기에 가능한 포부다.
HPV 관련 질병의 역학과 예방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올해 개정된 대한소아감염학회 제11판 예방접종 지침서에는 11~26세 남성에게 HPV 감염 및 질환 예방을 위해 예방접종을 고려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의료 현장에서 남성 접종이 전향적으로 고려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정부도 대한민국 미래 세대의 건강 백년대계를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남자 청소년의 HPV 관련 암 예방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