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의 등장…‘육식 공동체’가 점령한 예능에 파문을 일으키다

2025-01-30

환경·동물권 등 이유로 채식 주목

여전한 육식 문화 속에선 이질적

낯설고 불편한 것으로 취급된다

음식이 지닌 ‘문화적 상징’에 따라

채식은 육식에 대한 비난처럼 인식

하지만 본질적으로 음식은 ‘취향’

지속 가능하지 않은 오늘날의 섭생

채식은 ‘배려’가 아닌 ‘존중’으로

맛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마련됐다

“사탄들의 학교에 루시퍼의 등장이라.”

일찍이 많은 이의 항마력을 강타했던 드라마 <상속자들>의 명대사이다. 줄여서 ‘사학루등’이라고도 불리는 이 말의 본질은, 특정 가치관과 규범을 공유하는 집단에 등장한 이질적인 존재를 겨냥한다. 사학루등은 밈의 속성에 어울리게 다양한 상황에 적용된다.

최근 <나는 솔로>(ENA, SBS Plus) 24기의 한 출연자는 자기소개에서 ‘채식주의자’라고 밝히며 ‘나솔 세계관’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익히 알려졌듯, <나는 솔로>는 결혼을 원하는 결혼적령기의 남성과 여성이 4박5일간 합숙을 하며 서로의 짝을 찾는 연애 데이팅 프로그램이다. 출연자들은 자산부터 얼린 난자(!)까지 아낌없이 공개하며 결혼을 전제로 하는 연애에 전력 질주한다. 정상성의 치열한 경합장인 연애의 정글에, 채식주의자의 등장이라. 그를 둘러싼 반응은 인류학 도감이라는 농담을 들을 만큼 천태만상이 출연하는 <나는 솔로>에도 나름의 정상성 필터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표준체중이 아닌 여성 출연자는 거의 없고, 출연자 대부분 화이트칼라에 대졸 이상의 학력이라는 사실처럼. 최근 환경과 동물권, 건강 등 다양한 이유에서 채식의 수요가 급증하고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육식 위주 문화는 채식을 낯설고 불편한 것으로 취급한다. 채식주의자를 유난스럽다고 비난하거나, 이들의 존재 자체를 ‘고기 먹는 나’를 위협하는 공격으로 인식한다. 이는 음식이 단순한 섭취물이 아니라 문화적 기호이자 다양한 상징이기 때문이다.

24기의 채식주의자 출연자에게 주어진 이름은 순자. 그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들은 <나는 솔로>의 황금 트리오 패널, 데프콘·송해나·이이경은 펄쩍 뛴다.

육류는 그만큼 ‘보편적’인 음식이다.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1인 1닭”, “고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소화 잘되는 고기” 같은 ‘고기 밈’은 육류 선호를 절대화한다. 미디어에서 육식과 채식이 재현되는 빈도와 양상은 확연히 다르다. 각종 ‘먹방’ 프로그램에서 욕망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촬영되는 음식은 육류이다. “호의는 돼지고기까지, 이유 없는 소고기 없다”라거나 “풀떼기밖에 없는 밥상” 타박은 자연스럽게 육류와 ‘성의, 존중, 가치’를 연결한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퀴즈의 상품은 한우 세트고, 데이팅 프로그램에서 한우를 먹는 것은 호감 표시이다. 반면 채식을 다루는 기사는 건강 또는 라이프스타일과 관련 짓거나, 채식을 그만둔 연예인을 집중 조명하며 ‘채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채식은 사찰 음식이나 질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자연식처럼 일상과 멀다. 정치적 목적의 채식은 거의 조명되지 않는다. 밥은 먹었냐는 질문이 인사이듯, 음식 공동체는 무언가를 함께 먹으며 결속력을 다지고 친밀해진다. 이는 곧 ‘육식 공동체’이기도 하다. 육식 공동체에서 고기는 ‘너’와 ‘내’가 가까워지고, 한편으로는 나누는 방식을 통해 서열을 확인하는 장치이다. ‘고기반찬’이나 닭 다리는 식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에게 주어지고, 고기를 지급하는 것은 경제력을 쥔 자가 영향력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음식 문화사에서 권력과 결합한 육식 문화는 남성 상위와 여성 하위의 구조로 해석된다. 페미니즘은 육식에 ‘남성성’이 부여되고,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소비하고 착취하는 방식이 가부장제와 유사성을 띤다고 지적한다.

즉 어떤 의미로든 육식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취향의 문제를 넘어선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육류를 거부하는 영혜의 행동은 남편과 아버지의 분노를 산다. 영혜는 남편의 회사 상사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육류를 먹지 않음으로써 ‘튀는’ 존재가 되고, 사람들은 그런 영혜를 거북해한다. 알레르기가 있다는 ‘피치 못할’, 그러나 ‘의도적이진 않은’ 핑계를 댔다면 상황이 좀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혜가 원하는 것은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현명함, 그 어중간한 평화가 아니다. 영혜는 저항한다. “채식 혹은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재생산해내고 있는 기본 관념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바로잡으며 그를 통해 우리 자신의 근원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실천적 움직임”이다(신수정, 「한강 소설에 나타난 ‘채식’의 의미 :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문학과 환경’, 문학과 환경학회, 2010, 5쪽).

원래 육식을 즐겨 하고 육류 요리에 능했던 영혜는 남편이 ‘평범해서 골랐다’고 말할 만큼 가장 보통의 존재였다. 그러나 영혜가 육식이 상징하는 폭력을 거부하면서 그는 공동체를 위협하는 이물질이자 이해 불가한 타자로 툭 불거져 나온다. 영혜의 아버지는 모난 자리에 정을 내려치듯 영혜의 뺨을 때리며 입에 고기를 욱여넣는다. 영혜를 ‘정상화’하는 방식으로 고기를 먹이려는 것이다. 이런 아버지, 소설이라서 너무 과장되어 있을까?

채식주의자를 조롱하고 배척하는 폭력은 다양한 스펙트럼에 분포된다. 매운맛의 극단에는 채식주의자가 이중적이라며 비난하고 조롱하는 유튜브 영상이 100만 조회 수를 거뜬히 넘는다. 순자가 가죽 가방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소지품이나 행동을 낱낱이 검열하는 방식은 과거 이효리를 둘러싼 논란과 닮았다. 모피를 반대하면서 가죽 제품을 착용했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던 이효리는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옳다고 믿지만 실천하기까지 수만 번 갈등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려고 노력’한다고 해명했다. 개인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일관될 수는 없다는 보편적 진실, 비주류의 신념을 실천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환경, 매 순간 작동하는 다양한 요인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순자가 인터뷰에서 ‘친구들이 나를 배려해 식당을 골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자 이기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개인의 둔한 성향을 비난할 때, 지배적인 육식 문화를 고찰해볼 기회는 뒤로 빠진다. 육식 중심의 선택이 늘 압도적이라는 현실보다, 채식주의자를 배려하는 드문 상황이 강조되는 것이다.

여성 뮤지션들이 경합을 벌인 서바이벌 프로그램 <굿 걸>(Mnet)에 출연했던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은 어떤 동물성 식품도 섭취하지 않는 비건 채식주의자였다. 프로그램에 치킨 PPL이 들어와 다른 출연자들이 모두 치킨을 먹는 동안 슬릭은 멀뚱멀뚱 앉아만 있다. 감자튀김 정도는 따로 제공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육식이 기본값이라는 문제점을 간과하면, 채식주의자는 번거롭고 배려를 요구한다는 인식을 그대로 내면화하게 된다.

<나는 솔로>의 데이트 장면에서 순자가 속한 데이트 팀은 식당을 찾아 헤맨다. 처음에 가기로 한 횟집이 만석이고, 가는 곳마다 촬영을 허락해주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이는 마치 순자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고깃집은 사방에 널렸는데 갈 수 없으니까.

기후위기가 코앞에 닥친 현실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음식 문화를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열 명이 육류를 조금 덜 먹는 것이 낫다는 말처럼 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미디어에서도 채식의 정치적인 측면을 존중하되 너무 비장하거나 낯설지 않게, 좀 더 산뜻하게 다루는 변화가 필요하다. <뿅뿅 지구 오락실2>(tvN)에서는 발리로 여행을 떠난 멤버들에게 퀴즈의 포상으로 비건식을 제공했다. 외국인 숙박객을 맞이한 <윤스테이>(tvN)에서는 채식 선택지를 마련했고, <흑백요리사>(넷플릭스)에서는 채소로 생선회의 맛과 아름다움을 구현한 ‘셀럽의 셰프’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쇠소녀단>(tvN)에서 진서연은 강도 높은 운동을 수행하면서도 채소로 아침을 먹는 ‘자연식물식’ 식단을 공개해 화제가 되었다.

12·3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이어지는 광장 집회에서는 시민 주도로 비건을 위한 간식이 제공된다. 이 사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보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때 신선한 채소를 섭취하는 문제가 계급과 직결되며, 시간과 돈이 없을수록 값싸고 질 낮은 육류 소비에 내몰리는 현실을 함께 비판할 수 있다.

일명 ‘저속노화 선생님’으로 유명한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은 식습관이 단순히 개인의 노력 문제가 아님을 꾸준히 지적하며 최근 편의점과의 컬래버를 통해 채소와 단백질이 포함된 도시락을 출시했다. 어떤 형태로든 음식은 복잡한 권력 문제 및 문화적 상징과 연루되어 있다.

풍요로운 상상과 선택을 요구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맛을 찾고 또 익숙했던 맛 속에 도사린 폭력과 위계의 문제를 성찰하는 경험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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