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엔 없는 것들 [이지영의K컬처여행]

2025-01-30

TV에서 드라마들을 보고 있자면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한다. 마치 ‘작가들이 담합해서 특정한 소재를 다루기로 작정한 걸까’라는 황당한 생각이 들 만큼 특정한 시기에 비슷비슷한 드라마들이 제작된다. 드라마들의 그런 경향성 혹은 트렌드들을 보면서 우리는 특정 시대의 정치적 무의식을 짐작해보기도 하고, 드라마가 반영하는 시대상을 읽어보기도 한다.

대략 2010년대 이후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한 장르물은 2019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흥행 전후로 다양하게 확대되었다. 만일 한국 드라마가 2000년대 드라마 한류를 이끌었던 연애 이야기에만 머물렀다면, 전 세계를 사로잡은 K드라마 열풍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드라마처럼 장르물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건조하지 않은 인간관계나 인물들의 개인적인 사연 등을 통해 미국 드라마와의 차별화를 추구했는데, 그중에서도 권력층의 부정의와 부패에 대한 분노,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주제의식이 K드라마의 중요한 특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 2년여 동안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제외하고 한국 TV 드라마들을 보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다. 물론 멜로드라마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멜로드라마들만 나오고 있는 것은 뭔가 징후적이다. 마치 2000년대 이전으로 회귀한 듯, 세상에 중요한 건 연애 이야기뿐인 것만 같은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에 K드라마의 중추적 특징이 사라졌는가에 대한 원인은 이 글에서 분석하고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최소한 K드라마의 다양성과 사회 비판적 주제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상당히 위험한 신호로 다가온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장르적 다양성의 부재는 한국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사라지게 하고, 사회 비판적 주제의식의 부재는 한국의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형성되어 온 K드라마의 정체성 중 하나를 사라지게 만들 위험성을 키운다. 이렇듯 전 세계의 호응을 얻었던 K드라마의 특징이 사라지게 되면 K콘텐츠의 인기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재들이 일시적인 것일지 아니면 장기적인 것일지는 모르겠다. 그동안의 드라마들이 어떤 이유로 사회에 대한 관심을 거두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러한 부재가 장기적이 된다면 그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시대정신은 아마도 과거로의 역행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삶과 사회에 비판적인 관심을 갖는 보다 다양한 드라마들이 다시 생산되었으면 좋겠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