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즌2'가 공개와 동시에 93개국 TV쇼 부문 1위를 달성하며 전 세계를 다시 한번 매료시켰다. 시즌1의 대성공 이후 2년 만에 선보인 신작은 공개 전부터 새롭게 등장할 한국 놀이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식품·패션·유통·금융·모빌리티 등 전방위적 산업과의 협업 마케팅으로 그 열기도 한층 고조됐다. 국내뿐 아니라 구글, 맥도날드, 마텔(바비인형 회사), 푸마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도 앞다퉈 시즌2 공개 일정에 맞춰 오징어게임을 소재로 마케팅을 펼쳤다. 작품 공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는 오징어게임을 패러디하거나 이를 소재로 한 2차 창작물들이 연일 쏟아졌다. 전 세계가 오징어게임의 놀이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세계적 열풍은 '문화적 확장성'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K콘텐츠로 시작된 이 작품은 이제는 콘텐츠 그 자체를 넘고, 한국이라는 경계도 넘어 전 세계인들이 함께 즐기는 글로벌 문화로 자리잡았다. 한국적 정체성의 울타리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중요한 확장 사례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K팝 분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트렌드를 휩쓴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노래 '아파트(APT.)' 또한 K콘텐츠의 문화적 확장성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아파트는 K뮤지션 로제의 한국적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음악성과 창의성으로 세계적 히트곡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성공 사례들은 앞으로의 K콘텐츠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방향성을 담고 있다. 지난 연말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콘텐츠산업 2024년 결산 2025년 전망 세미나'에서 한국 콘텐츠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성으로 '넥스트K(Next-K)'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역설적으로 넥스트K는 'K' 없는 K콘텐츠를 의미한다.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한국에서, 한국에 의해서 만든, 한국적인 콘텐츠의 한계를 초월해야 한다. 문화적, 지리적 경계를 넘어 'K'를 굳이 붙일 필요 없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넥스트K 전략의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H.I.P.(힙하게)'가 제시됐다. 여기서 'H.I.P.'는 '초현지화 전략(Hyper-localization)' 'IP 연관산업 동반진출(IP & Industry Expansion)' '새로운 해외판로 개척(Pioneer New Markets)'을 의미한다. 초현지화 전략은 단순한 현지화를 넘어 현지 문화와 정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콘텐츠 IP 연관산업 동반진출은 우수 콘텐츠IP를 중심으로 관광, 소비재, 식품 등 연관 산업이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 구축이다. 새로운 해외판로 개척은 기존 시장을 넘어 신흥시장에서의 기회를 발굴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이 중점 방향에 따라 2025년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다양한 글로벌 시장으로의 문화적 확산이 중요하게 여겨질수록 다채로운 우수 콘텐츠IP 발굴과 육성은 필수 전제가 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우수 콘텐츠IP의 발굴과 육성을 위한 장르별 콘텐츠 기획 및 제작지원 사업을 전개한다. 올해는 원천IP의 보고라 불리는 웹툰 분야 지원 예산이 84억원가량 증가한 가운데, 콘텐츠IP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유통하는 '한류연계 협업콘텐츠 기획개발 지원' 사업도 신규 추진하며 글로벌 IP 비즈니스가 활성화를 도모한다. 방송, 게임, 캐릭터 등 주요 장르의 국내 마켓 및 B2C 행사도 IP 확장을 위해 연계 통합 개최된다. 이 외에도 경쟁력 있는 콘텐츠IP가 뷰티, 식품, 패션, 소비재 등 연관산업과 만나 함께 해외진출 기회를 모색할 수 있게 주선하는 등 콘텐츠IP를 활용한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에 박차를 가한다.
콘텐츠기업의 해외진출에 대한 지원도 보다 정교하고 체계화된 방식이 필요하다. 한국수출입은행 수출업황 조사에 따르면 문화콘텐츠부문이 전 산업분야 중 유일하게 수출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2024 콘텐츠산업 수출전망 조사'에 의하면 다양한 콘텐츠 장르와 시장 권역에 따라 성공 기회와 장애요인이 상이하다. 방송영상 분야는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글로벌 OTT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2025년 수출 전망이 가장 흐리게 나타났다. 게임은 국내 대형 게임사의 신작 출시, 북미와 유럽지역의 시장 수요에 따라 다소 긍정적인 요소를 볼 수 있고, 음악 분야는 K팝 아티스트의 활동 확장과 해외투어 공연으로 수출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화권은 캐릭터 분야 수출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북미와 일본시장에서는 만화·웹툰의 성장이 기대되는 등 권역별 전망도 다양하다. 일원화된 수출지원 전략이 아닌 각 시장 상황에 맞춘 섬세하고 정교한 방식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5년 5개 신규 해외비즈니스센터를 포함하여 총 30개 센터를 운영하며 진출시장 다변화에 앞장선다. 각 센터는 시장정보 제공과 현지 바이어 발굴을 통해 중소 콘텐츠 기업의 안정적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현지 파트너 역할을 수행한다. 콘진원의 2025년 예산 중 수출분야는 전년대비 25% 증액됐다. 올해 관계부처 한류 합동 'K박람회'를 연 3회로 확대하고, 'K콘텐츠 엑스포'를 중남미, 동유럽, 중동 등 잠재력이 큰 신흥시장에서 개최하며 새로운 판로개척을 위한 장을 펼칠 계획이다.
아울러 넥스트K를 만들어낼 협업 체계 구축에도 집중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분야 인재양성을 위한 글로벌 산학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금융 투자 네트워크도 더욱 공고히 할 계획이다.
K콘텐츠는 이제 새로운 도약점에 서 있다. 넥스트K를 향한 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우리 콘텐츠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와 소통하는 새로운 길, 넥스트K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
유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hsyooa@hanmail.com
〈필자〉유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은 1992년 LG애드에 입사한 이래, 지난 30년간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서 전문성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2022년 9월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원장으로 임명된 이후, 2024년 9월부터 원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