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3년 유출 피해액 24조 넘어
보호 기술·보유 기관 적기 파악 ‘미흡’
클라우드 환경 등 심사 사각지대 존재
‘기술안보센터’ 기술검토 등 역할 수행
핵심기술 유출 벌금·손해배상한도 확대
클라우드 보호조치 가이드라인 보급
[정보통신신문=김연균기자]
첨단 산업기술은 높은 부가가치와 연관산업 파급효과로 경제·산업 고도화의 핵심 요소로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안전한 방패막을 설치하지 못한 탓에 산업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액은 수조원에 달하고, 보호대상 기술과 기술보유 기관을 적기에 파악하는 것도 미흡하다는 지적을 해소해야 한다.
■첨단기술 보호 중요성 부각
첨단 산업기술은 높은 군용 전용 가능성 등으로 경제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기술 확보·보호를 위해 ‘기술 통제’ 추세가 심화 중이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 지난해 9월 양자컴퓨터, 반도체 제조, 적층 제조 등과 관련한 24개 품목의 수출통제 개정안을 발표했고, 중국도 바이오, 희토류, 항공우주, AI를 포함한 광물·핵심기술에 대해 수출통제를 가속화하고 있다.
우려국의 기술 취득을 방지하기 위해 ‘투자심사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 재무부는 2023년 8월 미국인이 우려국에 대해 반도체·양자·AI 분야 기술개발·생산과 관련한 해외투자를 금지하거나 신고토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한 바 있다.
아울러 국가 차원에서 첨단 산업기술에 대한 접근 방지, 안보 위협 완화 등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 중이다. 일본의 경우 2022년 5월 민간정보 관리, 비밀특허제도 등의 내용을 담은 ‘경제안전보장법’을 제정하는 등 자국 특성에 맞는 보호전략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우리도 산업기술보호법,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통해 보호대상 기술 등을 정하고 의무부과, 행위규제, 침해금지·처벌 등 보호방식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기술 특성 및 보호 중요성에 따라 산업기술(4159개), 국가핵심기술(13개 분야 76개), 첨단전략기술(4개 분야 17개)로 구분·지정 중이다. 특히 국가핵심기술과 첨단전략기술에 대해서는 보호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국내 산업기술보호 ‘숙제’ 여전
지난해 대기업 출신 임원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 후 국내 핵심인력을 영입하고 해외 공장 설립과정에 핵심기술자료를 무단유출·사용한 혐의로 기소됐고,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 전·현직원 4명이 이직과정에서 회사가 보유한 대형 OLED 패널 양산기술을 해외 경쟁사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되는 등 주력·첨단산업에 집중된 기술 유출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피해액도 수조원에 이른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간 산업기술유출로 인해 추산되는 피해액은 24조8000억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국내에서 기술보호 제도를 보완·강화해 왔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는 남아 있다.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 대표는 “현재의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가 새로운 기술들이 빠르게 출현하는 상황을 신속히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수출심의, 기술판정 업무를 담당하는 비상근 위원회에서 기술지정 검토까지 담당하는 등 보호필요 산업·기술을 검토하기 위한 전담인력 부재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다양해지고 교묘해지는 기술유출 수법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재의 심사체계상 허점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도 증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심사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의미로 클라우드 환경 등 업무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기술보호 기준이 미흡하다는 결론이다.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 강도가 낮다는 의견도 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에 따른 판결문을 분석해보면 집행유예는 48%, 무죄는 24%에 달했다. 이는 산업기술 유출 특성상 피해액, 고의성 등의 입증이 어렵고, 기술유출 사건에 대한 전담 재판부도 부재해 처벌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이밖에 대기업·중견기업 대비 대학·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실태가 취약하며, 영역별로 보안의식과 인력관리 분야가 더욱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산업기술보호 실태조사 점검 결과, 대기업(91.9점)의 보안역량은 전반적으로 우수하나, 중소기업(76.8점) 및 교육기관(67.2점)은 타 기관 대비 열악했다.
■첨단기술 유출 예방·신속 대응
업종별 간담회를 비롯해 대·중·소 연구기관 간담회 등에서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현재 고시에 명시된 기술범위가 광범위해 기업들이 어느 범위까지 보호해야 하는지 불명확하다 △핵심기술 자료를 클라우드 서비스에 업로드하고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이에 대한 정확한 보안가이드가 필요하다 △퇴직인력에 대한 관리를 위해서는 인센티브가 필수적이다 등의 의견이었다.
최근 정부도 이 같은 의견에 대한 답을 내놨다.
‘제5차 산업기술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종합계획’에 따르면 보호 필요성이 높은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신규 지정하고,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설계와 제조공정 기술(배터리 분야), 합성개구레이다(SAR) 탑재체 제작·검증기술(우주 분야) 등 국가안보·국민경제 관련성이 높은 유망기술들을 신속히 국가핵심기술로 추가 지정한다.
기술개발 속도가 빠르고 기술 분석에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감안해 기술 전문성이 높은 기관을 ‘기술안보센터’로 지정하고 국가핵심기술의 지정·변경을 위한 산업분석, 기술검토 등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기술보유확인제와 등록제 도입을 통해 국가핵심기술 보유 예상 기업을 신속히 식별해 보호제도 안으로 편입하고 국가핵심기술의 이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한다.
보유기관에 대해서는 현장 실태조사를 확대해 관리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보안역량이 우수한 기업에 대해서는 수출심의 간소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발적인 기술보호 환경 조성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다양해지고 교묘해지는 기술유출 수법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현행 심사체계상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다. M&A에 대한 전문적인 심사를 위해 산업기술보호 전문위원회에 M&A 분야를 신설하고 미승인·미신고 수출과 M&A에 대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직권으로 중지·금지·원상회복 명령이 가능토록 제도를 개선한다.
최근 국내기업의 국가핵심기술 수출이 대폭 증가하고 있는 만큼 업계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수출심의 제도 정비에도 나선다.
기술유출 가능성이 낮은 핵심기술 수출행위에 대해서는 수출심의 절차를 일부 간소화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간소화가 적용되는 세부 수출유형에 대해서는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빠른 시일내로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해외유출 범죄 구성요건 완화, 핵심기술 해외 유출 시 벌금(15억→65억원)과 징벌적 손해배상한도(3배→5배) 확대 등 기존 처벌체계를 강화한다. 동시에 기술유출을 소개·알선·유인하는 브로커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해 기술보호 사각지대를 제거할 계획이다.
기술유출 범죄의 조·수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출범한 ‘범정부 기술유출 합동대응단’을 적극 활용해 공조를 강화한다. 법원의 관할집중 대상에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추가해 재판의 전문성도 제고키로 했다.
이밖에도 보안역량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대학·중소기업 대상으로 보안 인프라 구축, 보안컨설팅 등 맞춤형 지원도 확대한다. 대부분의 기술유출은 ‘인력’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핵심인력에 대한 관리와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국가핵심기술 보유기관의 클라우드 사용은 허용하면서도 기술유출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산업기술보호지침’에 클라우드 보호조치 기준을 마련하고,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보호조치 내용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내 가이드라인을 개발·보급할 계획이다. 보호조치는 △기술자료의 저장 공간 위치 △정보주체 및 사용자 권리 △사고시 대응절차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자와의 협업 등에 관한 사항이 담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