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정원] 바질과 AI 농업

2025-02-23

바질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허브다. 향과 맛이 독특해 샐러드·파스타·피자 등에 들어갈 만큼 쓰임이 다양하다. 내가 바질을 베란다에서 키우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이다. 그때 나는 파스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생바질이 꼭 필요했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마른 바질만 판매됐다. 지금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 생바질은 감히 구할 수가 없던 귀한 식재료였다.

그래서 바질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씨앗도 구하기 쉽지 않았다. 1년 가까이 수소문한 끝에 어렵게 씨앗을 구했다. 검은깨보다 작은 바질 씨는 씨앗부터 연약해 보였다. 화분을 사다 정성스럽게 씨앗을 심었다. 20여개를 심었는데 아파트 7층 베란다에서 발아에 성공한 씨앗은 7포기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해 여름은 바질 덕에 어떤 때보다 풍성한 이탈리아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바질은 단순한 허브가 아니라 나의 요리 동반자였던 셈이다.

그 뒤로 해마다 바질을 키웠다. 베란다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면 텃밭이라도 구해서 키웠다. 하지만 바질은 가을부터는 잘 자라지 않는다. 바질을 시장에서 사야 했다. 그렇지만 겨울철 바질 가격은 여름 성수기의 2배고 품질도 좋지 않다. 게다가 잘 나오지도 않는다.

토마토도 비슷하다. 토마토의 사각거리는 식감을 좋아하는 나는 유기농 완숙 토마토를 고집한다. 무농약 토마토는 구하기 수월하지만 질소비료 때문에 과육이 두껍다. 유기농 토마토만큼 사각거리지 않는다. 그나마 유기농 완숙 토마토는 성수기에도 구입하기 어렵다.

좀더 맛이 있는 농작물을 찾는 것은 채집경제 시절부터 이어온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지만 대량생산·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이런 본능은 사치쯤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무시되기 일쑤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까다로운 내 입맛이 비로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디지털 기기에 능수능란한 얼리어답터와 거리가 멀다. 라디오·레코드판(LP)·자전거 같은 아날로그 디바이스를 좋아한다. 그런 내가 AI를 반기는 까닭은 내 식성이 하나의 데이터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AI 농업은 파종·생육·수확뿐 아니라 유통·판매·가공·소비까지 농업 관련 수많은 과정을 일관화한다. 모든 것을 데이터화해 거미줄처럼 연결시킨다. 이런 AI 네트워크를 통해 내 입맛은 한겨울에도 바질과 토마토를 유기농으로 키우는 고집스러운 생산자와 이어진다. 까다로운 내 입맛도,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소농의 노력도 지속가능해진다. AI 농업이 단순한 농가소득 증대가 아니라 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사슬을 창출할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 그 가치사슬은 한겨울에도 나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