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to X'는 인공지능(AI)과 모든 분야(X)의 융합을 의미한다. 각 분야의 데이터를 최적화하고, 이를 활용해 특화된 AI 모델을 적용하는 기술이다. 의료, 제조, 농업, 교육 등 사실상 모든 영역에 적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AI와 의료의 융합은 질병 진단, 치료, 신약 개발, 의료기술 혁신 등 전방위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AI to X는 데이터가 풍부한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먼저 활용되고 있지만, 의료처럼 오프라인과 밀접한 사물인터넷(IoT), 사물인터넷연계(O2O)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시도와 실질적인 활용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 역시 'AI to X'라는 흐름을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5 현장에서 직접 체감했다. 세계 농기계 시장을 선도하는 존디어(John Deere)는 기존에도 첨단 기술과 자동화를 농업에 접목해왔지만, 이번 CES에서는 AI와 자율주행을 결합한 2세대 자율주행 키트와 다양한 자율 농기계를 선보였다. 농업의 생산성과 지속가능성을 혁신적으로 높이는 미래상을 제시한 셈이다. AI를 활용해 농업 현장의 인력난, 생산성 저하,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더 놀라웠던 것은 '한국의 존디어'라 불리는 국내 1위 농기계 기업 대동의 부스였다. 대동은 'AI to the field'를 콘셉트로, AI와 로봇 기술을 실제 농업 현장에 적용하는 미래 청사진을 공개했다. 특히 AI 식물 재배기는 CES 2025 혁신상을 수상했는데, AI와 농업 빅데이터를 활용해 작물별 생육 환경(온·습도, 조도, 배양액 등)을 자동으로 최적화하고, 생육 상태를 분석해 수확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대동은 앞으로 가전 기업과의 협업을 통한 스마트홈 확장도 예고했다.
이처럼 가장 보수적일 것 같던 농업 분야조차 'AI to X', 더 나아가 'AI to the field'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 검색이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AI로 대체되고, 수많은 AI 에이전트 서비스가 등장하며 우리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 AI는 이제 우리의 일상과 산업 현장 모두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필자는 사적인 자리에서 '장강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중국의 대표적인 대하(大河)인 장강의 흐름을 비유적으로 쓴 이 표현은, 시대의 대세나 역사의 흐름과 같은 거대한 변화는 개인이나 소수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자동차, 자판기, PC,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도 기존 기득권의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AI 발전과 'AI to X' 역시 거스를 수 없는 장강의 흐름이다. 이제는 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잘 활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 등 글로벌 선진국들은 대규모 LLM 개발과 AI 에이전트 서비스 확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지능형 소프트웨어(SW) 시스템이다. 단순 챗봇을 넘어, 환경을 인지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계획을 세우고 의사결정을 내리며, 이메일 발송, 일정 예약, 데이터베이스 조회 등 실제 행동까지 수행할 수 있다. 이런 에이전트들이 진화하며 'AI to X'로의 확장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AI 하면 현재는 LLM을 주로 논의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은 LLM 분야에서는 소버린 AI(주권형 AI) 관점에서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AI의 발전과 해당 서비스들의 성장은 이제 시작이다. AI 에이전트 기반 서비스는 이제 막 태동하고 있으며, 한국형 서비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 일본을 제외하면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진국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축적된 방대한 산업 데이터와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어, 'AI to X' 분야의 프로토타입 테스트와 대규모 사업화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글로벌 경제 불안과 기존 산업 구조의 한계 속에서도 AI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를 지니고 있음에도, 현업에 있는 제조업체 리더들과 논의해 보면 AI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느낀다. 심지어 일부는 직원들의 AI 활용을 통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AI 활용 결과물에 대한 신뢰, 자율적 사고 저해 등 우려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AI를 활용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성과물이 나오는지의 결과다. AI 적용과 활용에 대한 윤리적 잣대는 제조업 등 산업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교육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I가 아이들의 자율적 판단을 저해해 주체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걱정이다. 물론 남용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 왔던 기존 교육과의 어색함도 있다. 이는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결국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아이들은 AI를 통해 더 많이 질문하고, 더 창의적으로 성장하여 새로운 세대로 발전할 것이다.
AI가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많은 일들을 해내며 인간을 대체할 수 있기에 우리는 걱정하고, 그로 인해 기존 사용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란이 있다. 이런 일들은 지금까지도 수없이 반복돼 왔다. 오랜 기간 가사 노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빨래였다. 그 노동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 세탁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가 직접 빨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차가 없던 시절 도보나 말을 이용해 이동하던 것을 자동차로 부산까지 간다고 해서 우리가 직접 부산에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즉, AI는 우리가 가진 자유의지를 더욱 확장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대행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세탁기이자 자동차다. 이제는 그 AI를 세상 모든 분야에 적용해야만 하는 시기가 왔다.
AI to X는 이미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고, 곧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 것이다. 각종 산업 분야가 AI를 활용하게 될 것이고, 초기에는 데이터가 풍부한 분야에서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후 오프라인으로 확장되어 스마트팩토리, 의료, 농업, 물류, 국방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로봇과 결합된 형태로 우리의 모든 삶을 혁신할 것이다.
전기로 인해 많은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의 물리적 확장성이 극대화되며, 모바일 통신으로 이동성이 극대화된 것처럼, AI는 각종 서비스와 산업 그리고 우리 삶을 위한 인프라적 필수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글로벌 변동성이 극대화되고 국내 여러 상황이 좋지 않은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큰 흐름의 변혁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AI to X'의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한국은 이미 제조업, IT,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경험, 그리고 빠른 디지털 전환 역량은 한국이 AI to X 시대에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강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과 조직이 AI를 단순히 '도입'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 AI를 통한 근본적인 업무 혁신이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AI를 두려워하거나 통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실험해야 한다. AI가 인간의 창의성과 결합할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와 기회가 탄생할 것이다. 장강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 흐름을 가장 먼저 타고 넘어야 한다.
'AI to X'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어야 한다. 산업, 교육, 문화, 정치 모든 영역에서 AI와의 융합을 통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거대한 변혁의 물결 위에 올라탈 시간이다.
장강의 큰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그 흐름에 우리를 맡겨 보자.
목승환 서울대기술지주 대표 moksh@snu.ac.kr
〈필자〉서울대에서 재료공학과 경제학을 전공, SK커뮤니케이션에서 사업전략과 신사업을 경험하고 이후 10여년 동안 스타트업 창업과 자금회수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자에 입문했다. 공공 영역에 스타트업 생태계 기여가 필요하다는 결심으로 모교 투자사인 서울대기술지주에 2016년 입사해 2020년 내부 승진 대표직을 맡은 후에 연임하고 있다. 2017년 서울대STH 제1호를 시작으로 모태펀드, 성장금융, 지자체와 외부 출자자가 연계된 펀드와 성과 공유 기부형 펀드를 비롯한 총 14개 1200억원 규모 펀드를 운용하며 다양한 분야의 혁신 스타트업에 투자와 유니콘 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