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 공백 속에 커지는 동남아 시장…K방산 골든타임 잡아야

2025-10-14

글로벌 분석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방위산업(방산) 시장은 2024년 140억 달러에서 2032년 254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6~8% 성장률이다. 이런 성장세를 예상하는 이유는 3가지 측면의 변화 때문이다.

첫째, 다층적 안보 리스크의 심화다. 남중국해 문제와 역내 태국-캄보디아 국경 충돌, 사이버 공격과 드론 위협이 동시에 커지며 각국은 자주국방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내총생산(GDP)의 2.8%를 국방에 투입하며 지역 최강국 지위를 유지하고, 베트남·필리핀은 두 자릿수 예산 증액을 단행했다.

동남아 방산, 연평균 6~8% 성장

프랑스·일본의 시장 공략 본격화

‘평화 시스템 구축’ 파트너돼야

둘째, 미국의 ‘전략적 무관심’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동남아 각국의 대미 수출은 증가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동남아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트럼프 2기 첫 10개월간 공식 외교 메시지·연설·백악관 자료에 ‘동남아시아’라는 단어 자체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고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분석했다.

전통적 안보 파트너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동남아 국가는 새로운 선택지를 모색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달 아세안 정상회의에는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까지 참석한다. 미국 중심의 안보 질서에서 벗어나 아세안이 직접 글로벌 파워를 불러 주도권을 잡아가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셋째, 발목 잡힌 중국과 러시아의 공백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국이라는 정치적 한계로 인해 전략·고위험 무기 채택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품질 문제도 드러났다. 말레이시아가 가격 절감을 위해 중국제 연안임무함(LMS) 4척 도입을 결정하고 1차로 2척을 인도받았다. 그러나 중국산 전자장비·센서·기관 등 핵심 부품의 잦은 고장과 내구성 저하, 예비부품 확보 지연이 이어졌고, 기대했던 기술 이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나머지 2척(LMS 배치2)은 중국이 아닌 튀르키예 업체에 발주했다.

러시아는 동남아 1위 방산 수출국이었으나,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금융제재와 부품난으로 신규 수출과 유지보수가 사실상 중단됐고, 미국의 2차 제재 위험까지 더해지면서 베트남과 같은 전통적 고객이 이탈하고 있다.

방산협력으로 산업 고도화 모색

이러한 틈새는 곧바로 채워졌다. 프랑스는 인도네시아에 라팔 전투기 42대를 수출하는 계약을 성사시켰고, 튀르키예도 신형 전투기(KAAN)와 스텔스 드론(Talay)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수출 없이 자위대에만 무기와 장비를 납품해왔던 일본은 수출 요건 완화와 공식안보지원(OSA) 제도를 통해 동남아 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필리핀에 해안 감시레이더 시스템과 순찰함, 말레이시아에는 경비정과 해양 드론을 제공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태국과는 다양한 협력 사업을 협의·진행 중이다.

동남아 주요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특정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국가와 기술협력을 확대해 외교적 공간을 넓히는 미들 파워 전략이다. 단순한 무기 수입이 아니라 방위산업을 통한 산업 생태계 고도화를 원한다. 따라서 값비싼 최첨단 무기보다는 전쟁 억지력을 확보하면서도 자국 기업이 참여해 기술 이전을 받을 수 있는 협력을 선호한다.

현대전에서 무기는 단독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FA-50 전투기는 지상 레이더망과 연결해 실시간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고, 천궁-II 방공 미사일은 해군 함정의 전투 체계와 통합돼야 제대로 작동한다. 개별 무기가 아니라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며, 이는 20년 이상 함께 업그레이드하는 장기 파트너십을 의미한다.

인도네시아·필리핀 같은 도서 국가에는 이런 시스템이 더욱 절실하다. 광대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관리하는 해양 감시 시스템은 순수 군사용을 넘어 불법 조업 단속과 재난 대응에도 활용된다. 레거시 시스템을 단계별로 구축할 여력이 없는 아세안은 인공지능(AI)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은 낮춰 최신 체계로 도약하려 한다.

한국은 서구 수준의 품질과 합리적 가격, 기술 이전 의지로 동남아의 수요에 부응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해군에 LIG넥스원은 해궁을 납품할 예정이고, 한화시스템은 함정 전투체계와 수직발사대를 공급하고 있다. 단순 무기 판매를 넘어 통합 시스템 협력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아세안은 중동이나 폴란드처럼 한 번에 거액을 지불하는 ‘대어’는 아니다. 하지만 국방비를 매년 두 자릿수로 늘리며, 기술 이전과 현지 생산을 포함한 장기 파트너십을 원한다. 꾸준히 성장하며 한국과 통합 시스템을 함께 구축할 수 있는 시장이다.

한국, 아세안과 장기 파트너 전략 필요

그런 만큼 한국의 전략적 포지셔닝이 중요하다. 아세안이 원하는 것은 전쟁 무기가 아니라 평화 인프라다. 한국은 수십 년간 UN 평화유지군 파견과 재난 구조로 신뢰를 쌓았다. ‘위협 대응 무기’가 아닌 ‘안정 구축 시스템’을 판매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면, 필리핀을 해군 유지·보수·정비(MRO) 허브로, 말레이시아를 항공기 부품 생산 기지로 발전시키는 맞춤형 협력도 가능하다.

유럽과 중동에 이어 아세안까지 균형 잡힌 수출 구조를 구축한다면, 리스크를 분산하면서도 각 지역에서 장기 협력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방산 수출 확대가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소프트파워에 미칠 영향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무기를 파는 나라로 인식된다면 K컬처로 다져진 창의적인 한국의 이미지는 퇴색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평화 구축 시스템’이라는 포지셔닝이 중요하다. 해양 안전과 재난 대응·불법 조업 단속이라는 공공 가치를 강조하고, 기술 이전을 통해 현지 산업 생태계 발전에 기여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K방산이 단순히 무기 판매자가 아니라 지역 안정과 번영을 함께 만드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때, 경제적 이익과 국가 브랜드를 동시에 지킬 수 있다. 지금이 ‘K방산 평화 시스템 전략’을 실현해갈 골든 타임이다.

고영경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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