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종 지인의 의뢰를 받아 물건을 고친다. 타인의 물건을 수리하는 일은 한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것만큼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그래서 의뢰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열심히 듣고, 가끔 ‘알아서 해달라’는 이들에게도 재차 묻는다. ‘이 물건의 어떤 점이 좋아서 계속 쓰고 싶은가요?’ 수리는 물건을 ‘계속’ 쓰기 위한 노력이다.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면 분명히 ‘그 물건’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이유를 들을 수 없다면 직접 유추한다. 새 사람을 만나면 그의 됨됨이를 생각해보듯, 물건을 만나면 그의 용도와 쓰임과 만듦새를 탐색한다. 어떤 물건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울린다. 친구 어머니가 맡긴 오래된 머리핀이 그랬다.
처음에 ‘머리핀을 고쳐달라’는 부탁을 들었을 때는 고장 난 부품을 구해 교체하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막상 받아보니 리본이 무척 낡아 있었다. 색이 바래고 올이 풀린 데다 벨벳의 표면이 닳아 누더기 같았다.
이 머리핀은 1985년 대구백화점 포항점에서 산 것. 의뢰인은 언제나 만듦새가 좋고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사서, 최대한 오래 쓰고 망가지면 고쳐 써왔다. 이는 내가 지향하는 소비의 방식이기도 해서 낡은 머리핀을 보는 순간 감명을 받았다.

의뢰인이 주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리본 형태일 것, 차분하고 무난한 색상일 것, 머리핀에 비해 리본이 너무 크지 않을 것. 머리핀을 살펴보니, 도중에 리본이 떨어져서 글루건*으로 고정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리본을 말끔히 떼어내고 핀을 닦았다. 금색 도금이 벗겨졌지만 녹슬지는 않았고 여닫는 클립의 탄력도 쌩쌩했다. 대부분 머리핀이 고장 나지 않은 상태에서 버려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40년 된 머리핀이 참으로 귀하게 여겨진다.
손뜨개로 리본을 만들었다. 가지고 있는 실 중에서는 가장 차분한 코코아색과 아이보리색 실을 사용했다. 편물을 원통형으로 떠서 가운데를 묶으면 나비 모양의 리본이 된다. 만들고 보니 디자인이 심심해서 낚싯줄로 자수정과 담수 진주를 리본 매듭에 꿰매 붙였다(이들도 다른 장신구가 망가져서 생긴 재료이다). 핀에 글루건을 쏘고 뜨거운 풀이 굳기 전에 재빨리 리본을 붙였다. 핀 가장자리에 있는 구멍과 리본을 바느질로 한 번 더 고정하면 리본의 형태를 잡아주는 데다, 풀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잘 버텨준다.
누군가 오래 간직한 물건을 만나게 되는 건 값지고 행복한 경험이다. 본래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니라도 함께한 시간이 쌓이면 인생이라는 퇴적층의 일부가 된다. 수리를 맡기는 것은 자기 삶의 조각을 맡기는 일이니, 수리하는 사람에게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뢰인이 단순히 ‘수리하는 행위’에 흥미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도 좋지 않은가?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 물건이어야 하는 이유’를 비로소 찾게 될 테니 말이다.
*‘글루건’ (=핫멜트글루건)
고체 풀을 열로 녹여 쓰는 총 모양 공구. 유선형과 충전식 무선형 글루건이 있다.

▲모호연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일상 속 자원순환의 방법을 연구하며, 우산수리팀 ‘호우호우’에서 우산을 고친다. 책 <반려물건> <반려공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