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 전쟁의 여파가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로키(언론 노출 자제)’ 행보 속 자기방어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악관 역시 관세정책의 장기적 효과를 강조하면서도 단기적인 경제 충격은 인정하는 발언을 내놓아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백악관 당국자는 10일(현지 시간) 증시 급락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성명을 내고 “주식시장의 동물적인 감각과 업계 지도자들에게서 파악하는 실질적인 상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미칠 영향에는 후자가 전자보다 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등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장기적으로 호재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지만 단기적으로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백악관은 이날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LG전자 등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대미 투자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취합해 정권의 성과로 홍보하기도 했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산업계 지도자들은 관세, 규제 완화, 미국산 에너지 활용 등 미국 우선주의 경제 공약에 대해 수조 달러를 투자하고 새 일자리 수천 개를 창출하겠다는 약속으로 반응했다”고 강조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역시 CNBC와의 인터뷰에서 “1분기에 데이터(경제 관련 수치) 일부가 삐걱거렸지만 2분기부터는 모두가 감세 정책의 현실을 알게 되면서 경기가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정책의 중장기적 효과를 강조하는 발언을 쏟아내기는 했지만 백악관은 당초 예상과 달리 주가 폭락 등 경기 이상 신호가 잇따르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취임 직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취재진 앞에 섰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일정으로 기술 분야 최고경영자(CEO) 회동, 행정명령 서명, 비밀경호국 국장 취임 선서식 등을 예고했지만 취재진을 들여보내지는 않았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이날 하루에만 100여 건의 게시물을 올리며 자기방어에 열중했다. 이날 건수는 최근 하루 평균보다 5배 이상 많은 것으로 캐나다 관세 비방 등 일부 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썼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워싱턴DC에 있는 재계 단체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찾아 월가 은행 등 각계 기업을 이끄는 CEO들과 회동하기로 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척 로빈스 시스코시스템스 CEO가 의장을 맡고 있는 단체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CEO 등 경영인 200명 이상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앞서 전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침체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하고 “과도기(transition)가 있다”는 답변만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