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스마트가전 시대①] 1인 가구 1천만... 사상 초유의 경제집단이 온다

2024-10-02

[커버스토리] 超솔로사회의 공습, AI가전이 온다

가족 울타리 옛말... 당당히 ‘나’ 먼저 시대

가전업계 큰 손 부상... 가치 소비성향 두드러져

30-40대 탄탄한 경제력, 디지털 활용 능력 겸비

부족함·행복 채우기 집중... AI집사·펫가전 열기

솔로경제 시장 120조... 기업에는 도전이자 기회

2024년 10월 대한민국. 1인 가구 1000만 시대. 사상 초유의 경제집단이 온다. 세집집 건너 한집은 솔로族. 내년이면 1인 가구의 비율이 36%를 넘어설 전망이다. 학계와 경제계는 1인 가구를 ‘제3의 가족’으로 접수했다. 이미 비즈니스 환경에 혁명을 불러오고 있다. 시장에 ‘맟춤형 AI 가전’이란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부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제 1인 가구를 겨냥한 스마트 가전의 분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컨버전스(복합기능)냐, 디버전스(단일기능)냐. 쏟아지는 스마트 가전의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성역, ‘솔로 이코노미’ 속으로 들어가 본다. <편집자註>

[smartPC사랑=박봉균 기자] #서울 성북구에 사는 5년차 직장인 고 모(27)씨 반려견 목에는 나비넥타이가 매져 있다. 단순히 멋내기용이 아니다. 고씨가 출근 후에도 반려견의 위치를 확인하고, 활동량이나 휴식량을 분석해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웨어러블 가전제품이다. 회사에서나 퇴근길에도 반려견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도 있다. 또 음성메세지를 발송하거나 촬영모드, SNS 공유 등 첨단 AI기능이 숨어있다. 싱글인 고씨에게 이 제품은 반려견 돌보미로 ‘딱’이다. 고씨처럼 급증하는 1인 가구 덕분에 반려견 관련 가전 제품 시장도 2년내 약 4조원 규모 성장이 예상된다.

1000만명.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국내 1인 가구 수다. 전체 가구의 35.5%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됐다. 가전업계에서 고씨같은 1인 가구를 겨냥한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는 이유다. 1인 가구는 2000년대 들어 크게 늘었는데, 4인 가구 비율이 31.1%에서 13.3%로 감소한 것과 대비되는 수치다.

막강한 소비력을 갖춘 ‘1인 가구’는 유통을 넘어 가전업계의 큰손으로 더 작고, 더 간편한 상품·서비스를 속속 등장시키며 경제 지형을 바꾸고 있다. 일단 가전은 똑똑하고 작은 게 인기다. 생활공간이 협소한 싱글족에게 각종 생활필수품은 ‘소소익선(小小益善)’. 혼자 먹고, 혼자 즐기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솔로 이코노미’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인구통계학적 사고(思考)로 보면 1인 가구는 그저 현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솔로 이코노미’라는 키워드가 기존 경제·사회·문화·정치 구조를 흔들 만큼 강력한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지금까지는 남에게 인정 받으려고 노력했다면, 혼자 하길 선호하고, 관계를 최소화하고 대신 나 자신의 행복과 안위를 추구하는 데 집중하는 트렌드로 급변 중”이라고 진단한다.

‘솔로 이코노미’에 속한 20〜30대의 젊은 층은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며,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하다. 심지어 주거공간도 혼자만의 취미 생활을 위한 ‘맞춤형’ 공간으로 확장해 스마트한 삶을 영위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는 1인 가구가 하나둘 합쳐지며 거대한 소비 집단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싱글족이 소비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가전업계가 유독 영향을 받고 있다. 물론 ‘솔로 이코노미’를 쫒으며 기술적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한 가전업계 마케팅 관계자의 전언이다. “솔로 이코노미의 근저에는 한국적인 집단주의와 인맥 중심에 대한 염증이 자리한다고 할 수 있다. 조직과 회사는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야 할 대상이다. 대신 그들은 필요와 목적에 따라 만난다. 한 손으론 밥을 먹으면서도 다른 한 손으론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터치하며 외부와 소통한다. 귀가하면 스마트 가전으로 요리와 휴식을 취한다. 혼자 뭔가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낯선 사람들과 ‘소셜 다이닝’을 하는 역설적 태도를 보인다.”

이들 세대는 기본적으로 스마트폰 업그레이드에 민감하고, 나름의 독특한 1인 가전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자리잡고 있다. 결국 소비 패러다임을 바꾸는 주역인 동시에 그 변화의 중심세력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런 세대는 자신을 위한 소비에 주저하지 않는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던 과거 세대와는 다르다. 이념보다는 합리와 상식을 중시하고 결혼과 출산 등 사회적 ‘관성’에서 자유롭다.

반면, 1인 가구 급증의 뒤안길에는 가파른 가족 해체가 자리한다. 작년 초혼 건수는 14만9000건으로 2015년 23만8000건 대비 37.2% 급감했다. 평균초혼 연령은 남성 34.0세, 여성 31.5세로, 2010년 대비 각 2.2세, 2.6세씩 상승했다. 이혼 건수는 9만2000건으로 2010년 대비 21.0% 감소했다. 20년 이상 함께 한 부부의 이혼 비중이 35.6%로, 2010년 대비 11.8%포인트(p) 증가했다. 3~4인 가족이란 울타리가 이제는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다.

1인 가구의 출현은 회사도, 사회도, 국가도 나의 미래에 대해 해답을 주지 못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당당하게 개인이 먼저 주체’가 되는 시대.

1인 가구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혼자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싱글족이라면 누구나 그럴듯한 경제관을 지향한다. 물리적·공간적 ‘홈’은 단순히 사는 것 외에도 심리적·정신적 재구성을 포함한다.

먼저 일본에서 유행했던 네오(新)싱글족이 우리 사회에도 세를 불리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독신문화로 결혼을 못한 게 아닌, 탄탄한 경제력, 디지털 활용 능력을 겸비하며 싱글을 만끽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얼리어답터에도 속한다. 디지털카메라 등 기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 주변사람에게 기기를 골라줄 정도로 준프로다.

그만큼 기업들이 네오싱글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하면 적극적으로 몰입하는 경향이 짙어서다. 돌봐야 할 가족이 없는 이들은 여가시간을 온전히 자기계발에 할애할 수 있다. 몰입한 만큼 새로운 가전기기를 위해 지갑을 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좀 우울한 싱글족도 있다. 패러싱글족이 그들이다. 패러사이트(parasite, 기생충)와 싱글의 합성어다.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생활을 즐긴다. 이들도 자신들의 공간에 컴퓨터, TV, 오디오, 게임플레이어 등을 완비해놓고 있다. 가족과는 살지만 일상생활은 공짜로 이용하면서도 별도의 1인 가구처럼 생활한다.

이들은 일본 불황기에 유행했던 캥거루족과는 조금 거리를 둔다. 독립할 나이가 지났지만 취업난과 집값 상승으로 부모에게 신세를 지며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유지하려는 이들이 캥거루족이라면, 패러싱글족은 향후 독립의향은 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싱글족은 20년전에도 있었다. 독신주의자로 불리기도 했다. 다만 과거의 솔로들은 결혼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취향의 문제로 확장됐다. 공동체 사회였던 한국도 개인주의로 옮아가는 형국이다. 오롯이 ‘나’를 주체로한 ‘1인 가구’의 재구성 키워드는 ‘역동성’이라 할 수 있다.

1인 가구는 나를 위한 소소한 사치를 즐긴다. 자신을 위해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2020년 기준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40만원으로 전년대비 2.3% 감소했는데, 이 중 1인 가구 월평균 소비지출은 132만원, 4인가구는 369만 4000원으로 조사됐다. 2인 가구로 보면 오히려 1인 가구 지출보다 떨어진 110만원대를 기록했다. 실제로 1인 가구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나 좋아하는 아이템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하는 가치 소비 성향이 두드러지는 셈이다.

특히 자기지향성이 강한 젊은 계층의 싱글족은 자지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을 즐기는 패턴이 컸다. 그중 나홀로 생활의 결핍감을 채우고 소소한 행복을 찾는 가전기기에 대한 지출 의지가 큰 것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AI) 집사’나 ‘반려동물가전(펫가전)’ 등이 꼽힌다. AI·로봇의 영역의 경우 1인 가구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일상 속 청소, 요리, 심지어 교육과 의료 서비스 같은 더 복잡한 인간의 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확장되면서 솔로 생활 방식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나홀로 아플 때 약을 복용해야 하는 시간이 되면, 냉장고에 내장된 스피커가 이를 알려주고 정수기는 복용에 최적화된 물의 양·온도를 맞춰 놓는다. 냉장고 안 카메라를 통해 자녀들이 소비기한이 지났거나 부족한 식재료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선보인 S사의 ‘AI 패밀리 케어’ 서비스의 일면이다.

펫가전도 가족의 결핍을 채우는 동시에 반려동물의 행복 충전도까지 ‘만땅’이다. 시간과 사료의 양을 사전에 설정하면 자동으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의 사료를 주는 ‘자동 사료급여기’ 구입에 2-3일 캠핑도 안심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조정할 수도 있고, 반려견이 식사를 완전히 끝냈는지도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싱글족은 곧 반려동물의 배설물 등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주는 등 공기를 깨끗하게 걸러주는 기능을 갖춘 ‘반려동물용 공기청정기’도 구매할 예정이다. 특별한 1인 스마트 가전을 통해 당장 부족한 ‘나’의 결핍을 즐거움으로 채워나간다.

물론 1인용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기본 백색가전은 물론, 건조기, 정수기, 로봇청소기, 의류관리기 등 소형 신가전도 흥행하며 1인 가구의 눈높이를 맞춰주고 있다.

송파에서 커피숍을 하는 송 모(37)씨는 최근 홈 씨어터를 싹 바꿨다. 그동안 국산 스피커 세트를 사용하던 그는 이번엔 유럽메이커 B사의 멀티 스피커 시스템을 장만했다. 세트에 500만원대로 기존보다 6배 이상 비싸다. 셋업이후 몰입감 높은 서라운드 사운드와 선명한 음성을 경험하면서 ‘혼영’ 취미에 다시 빠졌다.

싱글족의 누군가는 개인용 홈 씨어터가 없다면 진정한 라이프스타일의 집이라고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스웨덴산 가죽 시트로 편안함을 주는 좌석과 대형 스크린, 덴마크산 서라운드 사운드 스피커와 우퍼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기본. 스낵바와 아이스크림 응접실 등 제대로된 사교 모임 장소를 갖추려면 여기에 곱절은 더 든다.

고가의 수입차나 바이크에 목돈을 지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프리미엄 가전을 구매해서 값비싼 제품을 소비하는 것과 유사한 만족감을 얻으려는 싱글족의 심리에 스몰럭셔리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이들은 점심, 저녁 비용은 아껴도 자기가 좋아하는 스피커에 투자하는 비용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작지만 럭셔리를 추구하는 싱글 남녀들이 또 다른 시장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왜 작은 사치 트렌드에 열광하게 됐을까. ‘전이된 의미론’(매크래켄)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중산층이 부유층의 생활양식을 동경한다고 해서 그 소비를 쫓기에는 예산문제에 가로막힌다. 따라서 값비싼 집과 자동차, 보석 등 부유층 라이프스타일의 다양한 제품 중 구두, 지갑 등 조금 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대리만족한다는 심리를 지칭하는 게 ‘전이된 의미론’이다. 소소한 럭셔리, 작은 사치는 이러 ‘전이’이 한 방편으로 이뤄진다.

스몰럭셔리 트렌드가 조명 받으면서 관련 히트상품들도 등장하고 있다. 기존 프리미엄 제품보다 2~3배 비싸지만 S사 제품은 소비자를 사로잡고 있다. 인피니트 라인으로분류해 인테리어와 가전의 조화를 중시하는 네오싱글족을 겨냥한 제품이다. 냉장고·와인 냉장고·오븐·식기세척기·인덕션·시스템 에어컨 등의 맟춤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냉장고는 가격이 1000만원에 육박한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인피니트 키친 세트는 가격이 1500만~2000만원에 달한다.

‘1인 가구와 1인 경제’는 현재 지향적이고 감각 지형적이다. 너무 ‘나’가 강조되는 라이프스타일이라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부모 세대와는 다른 태도를 가졌을 뿐이다. 불안정한 미래에 솔로들의 선택은 합리적인 소비에 가까울 수 있다. 현재에 집중하는 것은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1인 청년가구의 경우 소득의 많은 부분을 소비에 투자하고 있었다. 작년 25~39세 1인 청년가구의 경상소득 대비 소득비지출 비중은 평균 64.5%다.(통계청) 취업난과 불황속에서 장기적인 대비보다는 현재의 생활 속 ‘소비’에 더 비중을 두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존 1인 가구의 집이 칙칙한 자취방에서 자신을 위한 ‘스마트 홈’으로 새단장 하는 열기로 상징된다. 대부분 작아진 크기에 다양한 기능이 멀티로 들어간 제품이다. 예전에는 이런 미니 제품들이 세컨드 가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1인 가구 공간의 핵심이다.

대표적으로 유선 청소기 대신 무선 핸드스틱 청소기를, 큰 화면의 TV대신 근거리에서도 벽에 대형 스크린을 쏠 수 있는 미니빔도 유용하다. 미니빔은 나홀로 캠핑족을 위한 휴대용 빔프로젝터로 진화중이다. 식물 생활가전도 눈에 띈다. 1인 가구 집들이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실내 식물 키우기와 조명 스탠드를 결합한 인테리어 제품이다. 집들이에 돈을 쓰려는 젊은 여성 싱글족들이 많이 찾는다. 이외에도 퇴근할 때 원격 조장되는 공기청정기, 밥솥, 오디오 등 1인용 스마트 가전의 매출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다.

이런 가전제품은 기능보다는 감성적 터치가 중요해진다. 소형이지만 가전 브랜드 시장에서 ‘디성비(디자인과 성능)’의 요소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 차별화된 성능에 디자인도 예뻐야 한다. 작아졌지만 편리하고, 주거공간에서는 인테리어 아이템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자신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아낌없이 소비하는 1인 가구 시대에 향후 가전제품 시장은 12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디성비’에 도전하는 업계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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