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의 존재
케기 커루 지음
정세민 옮김
가지
한국은 지금 반려견, 반려묘 등 반려동물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가 개나 고양이 같은 일부 동물을 사람처럼, 가족처럼 대하는 문화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더 오래 전 같은 지구에서 살았던, 그리고 지금 함께 사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매우 밀접하다. 영국 작가 케기 커루가 지은 『야생의 존재』는 유대와 적대가 뒤섞였던 인간과 동물의 4만 년 관계를 역사적, 과학적, 철학적 차원에서 다양하게 조명했다. 이 책에는 한때는 인류가 경외했던 대상이었던 동물들이 인간에게 밀려나는 ‘실낙원’의 대서사가 담겨 있다.

1만8500년~1만4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선사시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잘 보여 준다. 아득한 옛날 고대인들은 황소, 멧돼지, 사슴, 말 등 동물들을 숭배하듯 정성 들여 동굴에 그려 놓았다. 이때만 해도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세상의 중심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면서 인구가 늘고 서식지가 지구 전체로 확대하면서 그들이 발을 디딘 곳마다 다른 동물의 멸종이 뒤따랐다. 약 1만 년 전에는 거의 모든 매머드가 자취를 감췄다. 3000만 년 동안 지구를 누볐던 검치호랑이도 사라지고 일부 대륙에서 동굴곰, 거대 땅늘보, 거대 유대류, 웜뱃 디프로토돈, 쥐캥거루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인간은 땅을 더 개간하고 더 많은 사냥감을 손에 넣었다. 살아남은 동물은 인간을 피해 숨는 방법을 터득한 종들뿐이었다. 인간은 신 행세를 했다. 그들에게 유용한 동물만 골라서 번식시키고 그렇지 않은 개체들은 가차 없이 도태시켰다.
성경 창세 신화는 인간이 동물 위에 군림하는 구조를 만들어 지금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사다리 개념’을 만들어 인간을 정점에 놓는 인간 우월적 사고를 확립했다. 요즘 우리도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지 않는가.
어느 때부턴가 생존을 위한 수렵이 아닌 힘을 과시하기 위한 인위적인 사냥이 인기종목이 됐다. 고대 로마 콜로세움에서는 제국 전역에서 끌려온 코끼리, 기린, 오록스, 코뿔소, 하마, 곰 등 온갖 야생동물이 잔혹하게 살해됐다.
동물원에는 세계 곳곳에서 잡혀 온 동물들이 갇혀 야성을 상실했다. 1970년대 아프리카 대륙에는 약 40만 마리의 사자가 살았지만 지금은 2만 마리도 채 되지 않는다. 3억 년 동안 하늘을 지배해온 잠자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구 생명의 역사 38억 년 중 인간종과 같은 하나의 종이 지금처럼 전 지구의 생명계를 전적으로 그리고 압도적으로 지배한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동물은 지구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일꾼이다. 한 예를 들자면 상어, 늑대, 물고기, 고래, 코끼리 등 아홉 가지 주요 동물군은 매년 64억t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흡수한다고 한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는 데 필요한 탄소 흡수량과 맞먹는다. 동물 생태계의 파괴가 기후변화, 오염, 전염병, 홍수와 산불, 토양 악화로 이어지는 예는 수두룩하다.
뒤늦게나마 각성한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비버, 들소, 수달, 고래 같은 생태계 핵심종들이 하나둘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류는 다른 동물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종이 지구의 생명계를 완전 독점하는 왜곡된 구조가 부메랑이 돼 결국 인류의 존재까지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전파한다. 동물과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는 폴란드 비아워비에자 숲의 지에진카 스토리는 감동 그 자체다. 지구촌 리와일딩(재야생화) 필요성을 구구절절이 호소하는 저자의 외침은 어쩌면 인류에게 울리는 마지막 경종이 될 수도 있다. 레드라인을 넘기 전에 다른 동물들의 울부짖음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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