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드롬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배우 제임스 우즈, 데보라 해리, 잭 크렐리
상영시간 88분
제작연도 1983년
영화를 사랑하고, 특히 호러 영화를 사랑하는 기자가 ‘호달달’ 떨며 즐긴 명작들을 소개합니다. 격주 목요일에 찾아갑니다.
“텔레~ 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어렸을 적 자주 듣고 불렀던 동요다. 그땐 TV 방송의 인기가 정말 대단했다. 유치원 시절 동물원에 소풍을 갔는데 방송국 카메라가 등장하자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려갔다. 예쁜 아나운서 누나가 말했다. “TV 나오고 싶은 사람?” 아이들이 “저요! 저요!” 광란하며 마구 손을 흔들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른이 되고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비디오드롬>(1983)을 봤을 때 부지불식간에 텔레비전 타령하는 저 동요가 떠올랐다.
TV 화면 속 여자가 말한다. “맥스, 다시 시간 됐어요. 괴롭겠지만 천천히 정신 차릴 시간이에요. 저는 꿈이 아니에요.” 캐나다의 83번 채널 방송사 사장 ‘맥스’(제임스 우즈)는 음란물과 폭력물의 짜릿한 자극을 파는 사람이다. 어느 날 맥스는 해적 방송 전파를 통해 시청한 ‘비디오드롬’이라는 1분짜리 영상의 생생한 잔인함에 매혹된다. 맥스의 애인인 배우 ‘니키’(데보라 해리)는 비디오드롬을 녹화한 테이프를 보고선 비디오드롬 오디션을 보러 떠난다. 맥스는 ‘오블리비언’(잭 크렐리)이 주관하는 ‘브라운관 전도회’를 찾아가고, 비디오드롬을 제작하는 ‘배리’(레슬리 카슨)도 만난다. 맥스는 비디오드롬에 빠져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기 어려워한다.
크로넨버그는 그로테스크한 SF 바디 호러 영화를 찍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인간 육체를 변형시키거나 다른 사물과 융합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는 지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열외인간>(1977)에선 교통사고 수술로 흡혈 빨판을 갖게 된 여자, <스캐너스>(1980)에선 통신 네트워크에 정신을 연결시키는 초능력자, <플라이>(1986)에선 실험 실수로 육체가 파리와 결합된 과학자가 주인공이었다. 크로넨버그는 언제나 ‘선’을 넘는 예술가다. 그리고 <비디오드롬>(1983)은 인간과 미디어를 섞은 역겨운 이미지들로 선을 아득하게 넘는 작품이다.
<비디오드롬>에서 미디어학 교수 오블리비언은 TV 화면만을 통해 등장한다. “TV 화면은 정신의 눈의 망막이지. TV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생생한 경험이야. 그래서 TV는 현실이고 현실은 TV보다 덜 현실적인 거지.” 맥스는 니키의 입술이 클로즈업된 TV 화면과 섹스하듯이 머리를 들이밀고 손으로 주물럭거린다. 맥스의 몸에는 여성 성기를 닮은 비디오데크 입구가 생긴다. 배리가 이곳에 신음 소리를 내며 꿀렁대는 테이프를 삽입하자 맥스는 녹화한 대로 재생되는 테이프처럼 TV의 조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맥스의 오른손은 권총과 융합해 괴물처럼 변한다. TV가 꽝 터지며 피와 내장이 튀어나오는 결말에 관객은 맥스보다 더 혼란스럽다.
크로넨버그가 <비디오드롬>에서 미디어를 보는 시각은 살을 베듯이 선뜩하다. <비디오드롬>이 만들어진 1983년은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인데도 크로넨버그가 오블리비언의 입을 통해 미래 인터넷과 익명 세계를 예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블리비언은 태어났을 때의 이름이 아니라 내 TV용 이름입니다. 곧 우리는 모두 특별한 이름을 갖게 될 겁니다. 브라운관이 공명하도록 설계된 이름들이죠.” 맥스는 비디오드롬 세력과 전투하며 구호를 외친다. “비디오드롬에게 죽음을, 새로운 육체여 영원하라!” 사실상 스마트폰을 육체의 연장처럼 사용하는 현대인을 떠올라 기묘한 기분이 든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이유로 법원을 습격해 때려부수는 모습에서 미디어의 힘을 새삼 발견했다. 법원을 부순 이들은 유튜브를 봤다. 그들이 유튜브를 통해 본 한국의 현실은 종북 반국가세력이 준동하는 국가비상사태였을 것이다. 나도 난동의 현장을 실시간 유튜브로 봤다. 과연 오블리비언의 말에서 ‘TV’만 ‘유튜브’로 바꿔보면 ‘현실은 유튜브보다 덜 현실적’이다. 정말이지 한국 사회의 현실은 <비디오드롬>의 세계보다 덜 현실적이었다.
크로넨버그는 21세기에 들어서고선 바디 호러에서 스릴러로 장르를 옮겨 활약했다. <스파이더>(2002) <폭력의 역사>(2005) <이스턴 프라미스>(2007) 등은 크로넨버그가 시각적 그로테스크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인간 삶의 그로테스크를 그릴 줄 아는 장인임을 증명한 작품들이다. 그의 20세기 마지막 작품 <엑시스텐즈>(1999) 이후 23년 만에 바디 호러로 돌아온 <미래의 범죄들>(2022)을 보며 확신했다. 크로넨버그는 여전히 힘차게 선을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