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는 일본 극렬 우파들의 성지다.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과 달리 역대 일본 총리들이 이곳을 찾을 때마다 동북아 외교는 갈등과 혼란에 휩싸였다. 야스쿠니는 막부 말기 내전과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태평양전쟁과 같은 침략 전쟁에서 사망한 약 246만 명의 전몰자들을 신(神)으로 떠받들고 있다. 1978년에는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 전 총리를 포함해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도 비밀리에 합사했다. 군인으로 강제 동원돼 목숨을 잃은 한국인 2만 1000여 명의 혼이 서린 슬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야스쿠니에는 요시다 시게루가 1951년 총리 재직 때 처음 참배했다. 1975년 미키 다케오는 총리 자격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방문했다. 패전 40주년인 1985년 8월 15일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각료들을 거느리고 이 곳을 찾았다. 이는 일본 총리의 첫 ‘공식’ 참배로 기록되면서 한국·중국 등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야스쿠니가 동북아 외교의 ‘뜨거운 감자’로 전면에 부상한 것은 2001년 취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때부터다. 2006년 퇴임할 때까지 역대 최다인 6번이나 참배를 강행했다. 동아시아에서 반일 감정이 증폭되고 동북아 외교 지형도 불안해지자 일본 총리들은 이후 7년간 야스쿠니와 거리를 뒀다. 하지만 2013년 대표적 강경 우파인 아베 신조 총리가 관행을 깨고 다시 참배에 나서면서 주변국들을 자극했다. 한국 정부는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고 중국은 “흑백 전도”라고 날을 세웠다.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가 조만간 임시국회 선거를 거쳐 차기 총리에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각료 시절 수시로 야스쿠니를 찾았고 올 4월에도 참배했다. 하지만 다음 주로 예정된 야스쿠니 추계 제사에는 참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야스쿠니는 동북아 외교의 ‘리트머스시험지’다. 재임 기간 강성 지지층을 의식해 참배에 나설 것인지, 아니면 한미일 협력을 통한 국익 우선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