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르는 길이 점점 험난해지고 있다. 지난 26년간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해온 공명당으로부터 10일 ‘결별’을 통보받으면서다.
안 그래도 ‘여소야대’인 정국을 헤쳐나가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야권이 연합해 일본 ‘정권 교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다카이치 입장에서는 ‘사면초가’ 형국이다.
격랑이 일고 있는 일본 정치권의 향방을 쟁점별로 짚어봤다.

① 다카이치 총리는 불가능해졌나
일본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한다. 중의원(하원), 참의원(상원) 표결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2차 투표에 들어간다. 2차에서는 과반을 못 얻어도 최다 득표자가 총리가 된다. 그리고 중의원 의결은 참의원 의결에 우선한다.
현재 일본의 중의원 정당별 분포를 보면, 총 465석 가운데 자민당 196석, 입헌민주당 148석, 일본유신회 35석, 국민민주당 27석, 공명당 24석 등이다.
현시점에서는 1차 투표에서 각 정당이 자당 대표를 찍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과반 의석 점유 정당이 없는 만큼 1차 투표에서 총리가 나오긴 힘든 구조이다. 결국 결선투표 이전에 정당별 합종연횡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1당인 자민당 총재 다카이치가 총리가 될 것이 유력하다.
총리 지명선거 일정을 포함한 임시국회는 오는 20일 전후에 개회할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내다보고 있다. 오는 26일부터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 등 외교 일정이 예정돼 있는 까닭에 늦어도 24일 전에는 새 총리를 뽑을 전망이다.
그때까지도 새 총리가 선출되지 않으면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방일한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해야 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② 새로운 연립 정권 가능성은
각 정당이 각자도생 전략으로 투표해 다카이치가 총리로 선출된다면 다카이치는 역대 최약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석수가 과반에 턱없이 모자라 사사건건 야당 눈치를 봐야 한다. 야권과 그나마 대화가 잘 통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시바 총리와 달리 강경 우파 성향이 강한 다카이치에 대해서는 야권의 견제가 더 강해질 수 있다.
다카이치 총재 입장에서 승부수로 던질 수 있는 카드는 ‘새로운 연립정권 구성’이 꼽힌다. 유신회나 국민민주당을 연정에 끌어들이면, 정권의 덩치를 더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유신회와 가까운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다카이치 총재 당선 후 뒷전으로 밀려났다. 스가는 이번 총재선거에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지원했고, 자민당 새 지도부 인사에서 스가 측근들은 배제됐다. 다카이치가 전날 약 20분간 스가를 면담한 것은 이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협조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민주당은 자민당과의 연립에 의원들 반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후원 조직인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측도 자민당과의 연정에 대해 “있을 수 없다”는 태도다.
자민당으로서는 유신회 혹은 국민민주당과 연정을 꾸리더라도 ‘여소야대’ 국면을 탈피하기 어렵다. 숫자를 늘리기 위해 극우 성향 참정당이나 보수당을 끌어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그럴 경우 유신회나 국민민주당과 연대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③ 정권교체는 어렵나
일각에서는 정권교체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입헌민주당은 야권 총리 후보를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로 단일화하자고 이미 제안한 터다.
세 정당이 연합하면 자민당 의석수를 뛰어넘는다. 공산당 등도 다카이치보다는 야권 단일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표 대결에서 승산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다마키 대표는 여전히 “정치 이념이 다른 입헌민주당과 같이 할 수는 없다”며 “우리(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가 왜 갈라졌겠나”라고 반문한다. 입헌민주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일축한 것이다.
유신회는 ‘국민민주당이 동의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다. 사실상 반대다.
결국 현재로서는 야권에서 총리가 배출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이날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연립에서 이탈한 만큼 향후 야권 내 물밑 논의를 통해 새로운 ‘정권교체의 틀’이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④ 공명당은 왜 자민당과 결별했나
공명당은 ‘평화의 정당’을 표방하는 당이다.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양호한 관계 구축을 중시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피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등에도 참석해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곤 한다.
다카이치의 강경 우파 성향과는 기본적으로 결이 다르다. 공명당 고위관계자는 자민당 총재선거가 치러지기 훨씬 전부터 “다카이치가 총재가 되면 연립이 깨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 4일 다카이치가 신임 총재로 당선되면서 공명당은 다급해졌다. 공명당은 즉각 세 가지 우려를 다카이치에게 제안했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 △과도한 외국인 배척 정책 △‘비자금 스캔들’ 대응 문제 등이다.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이날까지 두 차례 다카이치를 만나 담판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외국인 배척 정책에 대한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전해졌으나, 비자금 스캔들 대응에 관해서는 양측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명당은 특히 다카이치가 옛 아베파이자 비자금 의혹에 연루된 하기우다 고이치 의원을 자민당 간사장 대행으로 임명한 것을 보면서 개혁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공명당은 지난 26년간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자민당과 연합해 대응해왔다. 최근 선거에서는 자민당 정치자금 문제로 크게 타격을 받았다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당세가 쪼그라드는 공명당 입장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가 비자금 스캔들 대응, 즉 ‘정치와 돈’ 문제다.
사이토는 이날 다카이치와 회담 후 “기업·단체 헌금 수령 가능 대상을 당 본부와 도도부현련(광역지방본부)으로 좁히는 규제 강화를 요구했으나, ‘앞으로 검토하겠다’는 답변 뿐이었다”며 “매우 미흡한 것으로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다카이치가 공명당에 대한 배려 없이 국민민주당과 연정 확대 논의를 한 것도 공명당 측을 불쾌하게 했다는 후문이다.
사이토는 “자민당과는 더는 같이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며 “앞으로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악수하고 헤어졌다”고 했다.
이로써 자·공 26년 연립정권의 틀이 와르르 무너졌다.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이를 두고 “자민당은 그간 공명당과 연대해 선거를 치르면서 일정한 이득을 얻었는데, 어느새부터인가 공명당을 ‘게타의 눈’ 정도로 취급한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일본 나막신인 게타를 신고 눈길을 걸으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껌딱지처럼 여겨왔다고 독설을 퍼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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