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섬에 있지만 아일랜드에 속하지 않고 영국 땅인 북(北)아일랜드는 아일랜드와 영국의 정체성이 공존하는 곳이다. 영국이 과거 수백년간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지배한 역사 때문인지 그 두 정체성은 관리 가능한 수준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유혈이 낭자한 무력 충돌로 비화하기도 했다. 북아일랜드와 영국의 분리, 그리고 아일랜드 섬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는 무장 단체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70∼1980년대의 얘기다. 1969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영국 소년 콜린 크룩스는 자연히 극렬한 분노와 혐오, 폭력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다.

훗날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크룩스는 “10살까지 (태어난 동네) 근방을 벗어난 적이 없다”며 “하지만 어릴 때부터 세계 지도를 보면서 큰 세상으로 나갈 미래를 꿈꾸곤 했다”고 회상했다.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외교관이 되며 어린 시절의 희망을 어느 정도 이루는 듯했다. 그런데 주한 영국 대사관 부임에 앞서 1993년 어학 연수를 위해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결정짓고 말았다. 경북 안동 출신의 한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북한(2018∼2021)에 이어 한국(2022∼현재) 대사까지 지내게 된 것이다.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9년 4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한국을 국빈으로 방문했다. 영국 국가원수가 한국을 찾는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한국은 물론 영국 외교 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당시 주한 영국 대사관의 1등 서기관이던 크룩스 대사에게 여왕의 방한 준비 실무 책임이 떨어졌다. 실은 본국 귀임이 임박했음에도 그가 “현장을 책임지고 기획하겠다”며 한국 근무 연장을 자원하고 나선 결과였다. 여왕은 서울에서의 국빈 행사 참석 외에 안동 방문 일정을 소화하기로 되어 있었다. 마침 크룩스 대사 부인의 고향이 안동이었으니, 세상에 이런 인연이 또 있을까.

크룩스 대사에 따르면 안동이 여왕의 방문지로 결정된 것은 ‘한국 역사와 전통의 정수를 보고 싶다’는 여왕의 바람 때문이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안동이 낙점됐는데 여왕 73세 생일이 겹쳐 행사가 커졌다”고 회상했다. 여왕이 안동에서 한국 전통 생일상을 받은 진귀한 체험을 지칭한 것이다. 그 준비 때문에 서울과 안동을 5차례나 오갔다니, 이쯤 되면 외교관도 ‘극한 직업’이라고 하겠다. 추석 연휴가 끝난 10일 안동시가 크룩스 대사에게 명예 안동시민증을 수여한 사실을 밝혀 눈길을 끈다. 안동과 영국, 그리고 한국과 영국의 관계가 더욱 끈끈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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