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GPU가 무슨 배달음식인가"…생뚱맞은 'AI 추경' [현장에서]

2025-02-04

석 달 전으로 돌아가 보자. 여야는 지난해 본예산 심의 때 예비비ㆍ특활비 등을 놓고 격전을 벌이다 초유의 감액예산안을 탄생시켰다. 당시 인공지능(AI)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추가경정예산에 AI 예산을 넣자는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애초에 추경은 불가피한 상황에 편성하는 예산이다.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나 대량 실업 등 편성 요건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최근 딥시크의 등장으로 AI 이슈에서도 밀리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여야가 갑자기 AI 전사라도 된 양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여당은 추경을 AI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구축, 연구개발(R&D) 지원, 인력 양성 등에 쓰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추경으로 단기간에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매년 AI에 한국의 1년 예산보다 많은 730조원을 쏟아붓는다. 중국 역시 수년 전부터 정부 주도로 강력한 AI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산물이 딥시크다. 한국의 AI 관련 예산은 대략 미국의 14분의 1, 중국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인력 육성도 문제다. 최고의 인재가 의대로 향하는 구조적 난제를 두고 AI 산업이 성장할지는 의문이다. 글로벌 AI 100대 기업에 한국 기업은 전무하다.

야당도 다르지 않다. AI 발전을 뒷받침할 반도체특별법 제정에 몽니를 부린 주체가 갑자기 돌변해 AI 추경을 밀어붙이니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그러면서 ‘5조원 이상의 AI 예산을 추경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디에 쓸지는 각계 논의를 거치겠다고 했다. 각론이 없는데 5조원이란 숫자는 어떻게 나왔는지 알 길이 없다.

추경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서둘러 구매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AI 전쟁의 핵심이 GPU라서다. 정부도 GPU 확보 계획을 앞당겼다. 국내 AI 전문가로 꼽히는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탄식한다. “전 세계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추경한다고 해서 GPU를 당장 사들일 수 있나. 엔비디아 GPU가 무슨 주문하면 오는 배달음식인가.”

대통령 권한대행과 국회의장, 여야 대표가 참여하는 ‘4자 국정협의회’ 회의가 곧 열린다. 기왕 ‘AI 추경’이란 생경한 조합이 탄생했으니 당리당략을 떠나 중지를 모았으면 한다. AIㆍ반도체 분야의 첨단 기술ㆍ인재 육성을 위한 장기적 토대 마련이 필요하다. 반도체특별법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AI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안정적 기술 개발이 가능한 R&D 환경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서두르지 말고 내년 이후의 예산까지 고려해 최적의 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새겨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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