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영혼의 피 냄새” 느꼈다…로스코 그림은 뭐가 달랐나

2024-10-17

권근영의 ‘아는 그림’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한강, 마크 로스코와 나2)

슬픔과 눈물, 겨울의 서늘한 기운을 글에 녹이는 한강(54)이 화가 마크 로스코(1903~70)를 눈여겨본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시를 거의 쓰지 않은 한강이 로스코에 대한 시는 두 편이나 썼습니다.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에 대한 감상으로 보이는 위 시, 그리고 로스코가 뉴욕 작업실에서 숨진 1970년 태어난 자신의 생을 돌아본 시 ‘마크 로스코와 나-2월의 죽음’입니다.

“그는 1903년 9월 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 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한강, 마크 로스코와 나-2월의 죽음)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의 며칠 안팎에” 잉태돼 태어난 그 9개월의 쓸쓸함을 시인은 예민하게 응시합니다. 생전에 로스코의 화실을 방문했던 김환기(1913~74)는 또 어떤가요. 뉴욕 타임스에서 로스코의 부고를 보고는 놀라 이렇게 썼습니다.

내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가 비명에 가다니. 어찌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예술가인 것도 같다. 인생을 거의 살았는데 왜 그랬을까. (1970년 2월 26일의 일기)

예술가들의 예술가, 로스코의 사각형은 왜 그들을 사로잡았을까요.

드빈스크풍 옷을 입은 유대인 아이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채로 미국을 횡단하는 여행이 어떤 건지 자네는 결코 모를 걸세.

로스코는 친구 로버트 머더웰(1915~91)에게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1903년 제정 러시아의 드빈스크(지금의 라트비아 다우가우필스)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태어난 마르쿠스 로스코비츠는 10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유대인 학살이 이어지면서입니다. 뉴욕항에 내려 오리건주 포틀랜드까지 갑니다. 이듬해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예일대에 입학했지만 학교 측이 그의 장학금을 대출로 전환한 후 중퇴했습니다. 유대인 학생들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던 때였습니다. 스무 살,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뉴욕의 지하철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사실적 재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경험한 대로 그렸습니다. 비정한 도시의 뭉개진 얼굴, 표정 없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어두운 바닥과 벽을 구분한 밝은 수평선, 베이지색과 진녹색의 기둥은 이후 그가 나아갈 색면추상의 씨앗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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