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고성] 소년이 온다

2024-10-17

우리 글로 된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혹자는 월드컵 우승만큼의 쾌거라 한다. 정말 축하할 일이고 대한민국 만세다. 지난 주 스웨덴으로부터 들려온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온 국민을 기쁘게 했다. 온통 부정적인 지표와 소식들만이 쏟아지고 있어 침체할 대로 침체한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다시금 부활케 하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의 대표 작품이 [소년이 온다]란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서가에서 뽑아 읽어 보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이었다. 한 소년의 처참한 죽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1980년의 잔혹한 진실 그리고 남은 자들의 처절한 트라우마까지 숨을 참으며 읽기 힘든 대목이 한두 줄이 아니었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이보다 더 잔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스웨덴 한림원이 발표한 한강 작가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선보였다”는 고상한 해설은 차치하고라도 그의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시적 표현이자 너무나 솔직한 독백이다.

이제 밝혀지는데 주인공 소년인 동호는 실존 인물이었다. 문재학(광주상고 1년) 군은 15살로 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 그날인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서 군에 의해 사살된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친구의 죽음을 수습지 못했다며 일찍부터 도청 내의 상무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소년은 집에 가자는 어머니 김길자 여사의 간곡한 호소를 뿌리쳤다. 도청을 사수해야 한다는 형들을 두고 자기만 갈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어머니의 가슴에 못이 되었다. 동호는 죽은 시민들의 관 앞에서 왜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지도 몰랐던 순진무구한 어린 학생이었다. 그저 일손이 부족하니 도와달라는 누나들의 요청에 응했을 뿐이었다. 그랬던 그가 도청 2층 복도의 중앙통로에서 사살된 것이었다. 왜 그는 죽어야 했을까. 작가의 시선은 여기에 오래 머물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은커녕 북한의 개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다. 발포 명령은 누가 내렸는지부터 몇 명이나 희생되었는지 그리고 군은 진압 후 수많은 시민을 끌고 가서 어떤 가혹한 행위를 했는지 어느 것 하나 규명된 것이 없이 지난 일이 되었다. 심지어 권력은 한강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활동을 제약했고 경기도 교육청은 그의 작품을 그릇된 성교육 자료라며 폐기처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노벨상을 부여함으로써 참혹했던 1980년의 광주를 다시금 되새길 것을 요구했다.

작년에 전남 장흥에서 한강 작가의 부친이신 한승원 선생을 뵈었다. 여전히 건강하게 창작활동을 하시며 동학혁명의 마지막을 장식한 장흥 석대들 전투에서 얻어야 할 교훈을 말씀하셨다. 동학군과 관군의 화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어쩌면 마음씨가 한결같이 고울까. 이제 화해를 이룰 수 있는 주체는 가해자들이다. 더는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거나 오도한다면 다시금 소년이 온다. 재학이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니 수많은 제2의 재학이 온다. 그들이 미래의 주역들이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진실된 사회를 넘겨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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