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근로자 317명이 미국에서 구금됐다가 1주일 만에 풀려나 수많은 국민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함께 건설 중인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현장에 불법 취업했다는 것이 구금의 이유였다. 이번 사태는 한국 기업들의 해외 투자 관행, 비자·노동 제도 정비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전 한국이민학회장)는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도록 하는 것보다는 행정·절차적 문제로 범위를 좁히는 게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설 교수는 “이민청 설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라며 “외국인 노동정책이 단순 노동력 공급 차원을 넘어 이제는 소비 인구 전략으로 전환할 때”라고 주장했다. 30여 년간 외국인·이민 정책을 연구해온 설 교수는 “산업·지역·복지와 결합한 장기 전략 차원의 국가적 비전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이번 조지아주 구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해외투자 기업의 공장 건설에 필요한 고숙련 인력의 현지 조달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현실이 작용했다. 우리 기업들이 단기 상용(B-1) 비자 또는 전자여행허가(ESTA) 체류 자격을 지닌 인력을 데리고 간 것도 안이했던 측면이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나 현대차 직원이 아니라 전문 건설 업체(하청 중소기업)의 파견 인력이었다는 점 또한 문제가 됐다.
-미국 이민 당국의 구금이 과도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한국 측에서는 ‘우리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는데, 당연히 필요한 인력 투입은 보장받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 미국이 원칙적인 비자 문제를 들이댔다. ESTA는 미국 내 취업이 불가능하고, 단기 상용 역시 경제활동의 범위를 둘러싼 이견이 존재한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자국 법률을 원칙대로 집행했다. 하지만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현지 주 정부 등은 투자를 환영하고 각종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대미 투자를 계획한 기업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사건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도록 하는 것보다는 행정·절차적 문제로 범위를 좁히는 게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길이다. 통상뿐 아니라 이민 당국 간 채널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지 공장 건설에 필요한 단기 인력에게 적합한 체류 자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 대기업과 함께 진출하는 중소 협력 업체 직원의 비자 문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 비자(E-4 비자)’를 만들어야 한다. 또 통상 당국의 협상 내용은 투자 관련에 국한될 수밖에 없어 이민 행정기관이 중요하다. 한국은 이민청이 없는 한계가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이민청 등 이민 컨트롤타워 설치가 왜 늦어지고 있다고 보나.
△정치적 부담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여전히 이민을 국가적 자산이라기보다 사회적 위험 요소로 보는 시각이 강한 듯하다. 부처 이기주의도 문제다. 법무부·고용노동부·농림축산식품부가 모두 ‘내 권한’을 내놓기 꺼린다. 마지막으로 국민 여론이다. 외국인 범죄나 복지 부담 이슈가 부각되면 반발이 커진다.

-이민청은 왜 필요한가.
△현재 외국인 정책은 법무부의 출입국관리, 노동부의 고용허가제, 농식품부의 계절근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 인구 대책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주무 부처가 없고 정책 일관성도 없다. 그러다 보니 조지아주 사건처럼 비자 문제를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없어 대응도 늦어진다. 이제 이민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캐나다는 이민부가 국가 전략의 중심이다. 호주 역시 마찬가지다. 이민이 국가 성장 동력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렸다. 반면 일본은 후발 주자로서 아직 부처 간 조정에 애를 먹고 있다. 한국이 참고해야 할 모델은 캐나다형 종합 이민 전략이다.
-이민청이 설립된다면 어떤 모습이 돼야 하나.
△이민청이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또 하나의 관료 조직이 될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권한과 비전이다. 단순히 출입국 심사나 비자 발급을 담당하는 데 그치면 의미 없다. 산업구조, 지역 인구정책, 복지 재정까지 연결하는 종합 전략 본부가 돼야 한다. 이민청이 노동력 공급, 소비 인구 확보, 정착 지원을 아우르는 정책을 총괄해야 한다.
-국내 조선업 등은 외국인 인력 문제를 안고 있는데.
△기술력은 설계와 제조 능력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인력 확보도 필수적이다. 한국 조선업 인력은 재생산 문제에 부딪쳐 있다. 회사 내 젊은 사람이 50대다. 이를 방치하면 한국 조선업 경쟁력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년 정도다. 외국인 근로자 중 우수 인재는 정착·귀화시켜 핵심 인재로 만들어야 한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등을 계기로 한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인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기술력 있는 외국인 인력 유치·육성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저숙련·저임금 근로자와 고숙련(기술·기능 인력) 근로자를 구분해 외국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현장훈련(OJT)을 통해 숙련시키고 체류 자격 변경을 통해 우수 인재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정책이 중요하다. 외국 인력 정책과 이민정책의 경직된 구분을 탈피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민청 신설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정책은 어떤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나.
△우리나라 외국인 인력 제도는 크게 세 가지 층위로 나뉜다. 첫째 글로벌 정보기술(IT)·연구 인재, 둘째 조선·건설 분야의 기능공, 셋째 농촌 계절근로자 같은 저숙련 인력이다. 특히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일자리를 보호하는 전제가 강하다. 하지만 농어촌 현실은 다르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보충 인력’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

-정부가 노동력 수급 차원에만 치중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정부 시각은 노동력 부족 해소에 국한돼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 문제는 소비 인구 부족이다. 지방에서 슈퍼마켓·은행·미용실이 문을 닫는 이유는 단순히 일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소비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 소멸은 노동력 문제가 아니라 소비 기반 붕괴 문제다. ‘노동력 부족’이라는 단선적 시각에서 벗어나 ‘소비 인구 부족’이라는 구조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들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산업을 혁신하며 새로운 소비 기반을 만들어낼 ‘잠재적 인구’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외국인 근로자의 정착형 이민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들도 있다.
△정주형으로 무작정 전환하는 것은 위험하다. 젊고 건강할 때는 보험료를 내고 혜택은 덜 받지만, 나이가 들면 의료비·기초생활보장 등 각종 사회적 지출 증가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단기 순환 구조가 재정적으로 합리적이다. 다만 글로벌 인재, 숙련 기능공처럼 자립 가능한 집단에는 정착 기회를 적극적으로 넓혀줘야 한다. 사회 통합 수준을 높이면서 비자 자격을 바꿔주고 교육도 같이 가야 한다. 과거와 달리 비자 체류 자격을 끊임없이 변경시켜주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 정부에서 도입한 지역 특화형 비자(F2R)를 평가한다면.
△지방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이 인구 감소 지역에 거주·취업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로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농촌에서는 연봉 3000만 원 이상인 일자리를 찾기 힘들다. 제도 조건이 지나치게 높아 정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외국인 정착을 통해 인구를 늘리려 해도 일자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힘들다.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지역 이민정책의 대안은 뭔가.
△지역 이민정책의 핵심은 소비 인구 확보다. 단순히 필요한 일자리 인력을 메우는 차원을 넘어 지역에서 생활하고 소비하며 경제를 유지할 인구가 필요하다. 예컨대 은퇴 이민자를 유치해 의료·레저 산업과 연계하거나 지역 대학과 글로벌 기능공 양성을 결합하는 모델이 있다. 노동력 중심이 아니라 소비 기반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정책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우선 노동력 공급만이 아니라 소비 인구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그다음은 글로벌 인재, 숙련 기능공은 정착 기회를 넓히고 저숙련 인력은 순환 체계를 유지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로 지역 특화형 비자는 실질적 일자리와 연계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업구조 개편과 맞물려야 한다. 단순히 인구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력이 어느 산업에 어떻게 투입되는지를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외국인 정책은 인구정책, 산업 정책, 복지 재정을 아우르는 종합 전략이 돼야 한다.
He is
1964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사회학 석박사를 마친 뒤 30년 넘게 이민·외국인 관련 연구에 매진해왔다. 한국이민학회장·한국사회학회장·한국조사연구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위원회를 비롯해 법무부·고용노동부·국가위원회 등 다양한 부처에서 외국인과 이민 정책 관련 위원으로 일했다. 지금은 국무총리실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이주에 관한 지속보고시스템(SOPEMI)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